[노성태 칼럼]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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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외환 위기가 발생하기 1년전 쯤에도 상당히 격렬한 경기논쟁이 벌어졌다.
지표로 보는 것과 피부에 와닿는 바가 크게 다르다는 얘기 또한 자주 나왔다.
반도체의 국제시세는 80%나 떨어졌고 국민들은 위기감까지 느끼고 있었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대표적인 경기지표인 GDP(국민총생산)로 볼 때 성장률이 7%나 된다면서 민간부문의 불경기 하소연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렇게 벌어진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격차를 해명해 보려고 필자는 96년 9월 당시 ''산수로 풀어본 경제위기 논쟁''이라는 글을 썼다.
수출 또는 수입가격이 급변하면,다시 말해 교역조건이 크게 변동하면 GDP가 믿을만한 경기지표가 될 수 없고 바로 이점 때문에 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GDP를 과신하던 정부당국은 고집을 버리지 않았고 그 결과 정책대응의 때를 놓치는 바람에 연쇄부도와 금융부실이 잇따라 결국은 경제파탄까지 불러온 것으로 여겨진다.
비슷한 일이 요즘에도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우일까. 최근에도 GDP가 10%나 성장하고 있지만 제2의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반도체가격이 큰폭으로 떨어지고 원유가격이 급등하면서 교역조건은 크게 악화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KDI가 ''분기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괴리문제를 교역조건 변화라는 실마리로 풀어보고자 나섰다.
당시와 지금의 유사점은 이 정도에서 그쳤으면 하는 바람과 과거의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4년전 썼던 글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우리가 반도체만 생산하는 나라라고 가정한다. 작년에는 반도체 2개를 생산해서 한 개는 국내에서 쓰고 나머지 한 개를 수출해서 그 돈으로 쌀 한가마니를 수입해 생활했다고 하자.
금년에 기술개발에 힘입어 반도체를 3개 생산하게 됐다면 GDP로 본 성장률은 50%가 된다.
그런데 반도체 국제시세가 4분의 1로 폭락하게 됐다. 이제는 반도체 2개를 수출해도 쌀을 반가마니밖에 사올 수 없다.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50%나 된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라고 생각하게 된다.
손에 남은 것이라곤 반도체 한 개와 쌀 반가마니밖에 안돼 작년보다 사정이 훨씬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역조건이 변하게 되면 GDP만으론 더 이상 국민들의 소득이나 복지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게 된다.
국민들의 소득이 반도체 한 개와 쌀 반가마니로 줄어든 것은 단순한 감(感)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고 숫자로 확인되는 사실이므로 이것을 제대로 대변해 줄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실은 오래 전에 학자들이 몇가지 대안을 제시해 두고 있었다.
국민소득 통계를 작성하는 한국은행에서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으므로 마침내 99년부터는 GNI(국민총소득)라는 새 지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GNI는 교역조건의 변동에 따른 국민소득 또는 복지면의 손실과 이득을 조정해 작성하는 지표다.
GDP와 이 지표의 움직임을 비교해 보면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에 관한 미스터리는 대부분 풀리게 된다.
금년 2분기중 GDP는 9.6% 성장한 반면 GNI로 본 성장률은 1.8%에 그쳤다.
반도체 수출가격이 폭락한 반면 원유 수입가격이 급등한 결과다.
기업이나 가계가 느끼는 불경기에 관한 감(感)이 새 지표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11월에 발표돼 봐야 알 일이지만 3분기에는 GNI로 본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정책 당국이 이 지표가 주는 메시지는 체감경기 정도로 무시하고 GDP성장률에만 매달려 ''지표경기는 아직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업의 채산성 악화와 가계의 소득감퇴에 대한 하소연은 이제 숫자로 확실하게 뒷받침되는 것이므로 더 이상 체감이라고 홀대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책 당국은 이번만큼은 선입견에서 벗어나 경기에 관한 모든 지표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충분한 대책을 강구함으로써 오판(誤判)과 실기(失期)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겠다.
< 본사 주필 >
지표로 보는 것과 피부에 와닿는 바가 크게 다르다는 얘기 또한 자주 나왔다.
반도체의 국제시세는 80%나 떨어졌고 국민들은 위기감까지 느끼고 있었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대표적인 경기지표인 GDP(국민총생산)로 볼 때 성장률이 7%나 된다면서 민간부문의 불경기 하소연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렇게 벌어진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격차를 해명해 보려고 필자는 96년 9월 당시 ''산수로 풀어본 경제위기 논쟁''이라는 글을 썼다.
수출 또는 수입가격이 급변하면,다시 말해 교역조건이 크게 변동하면 GDP가 믿을만한 경기지표가 될 수 없고 바로 이점 때문에 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GDP를 과신하던 정부당국은 고집을 버리지 않았고 그 결과 정책대응의 때를 놓치는 바람에 연쇄부도와 금융부실이 잇따라 결국은 경제파탄까지 불러온 것으로 여겨진다.
비슷한 일이 요즘에도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우일까. 최근에도 GDP가 10%나 성장하고 있지만 제2의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반도체가격이 큰폭으로 떨어지고 원유가격이 급등하면서 교역조건은 크게 악화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KDI가 ''분기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괴리문제를 교역조건 변화라는 실마리로 풀어보고자 나섰다.
당시와 지금의 유사점은 이 정도에서 그쳤으면 하는 바람과 과거의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4년전 썼던 글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우리가 반도체만 생산하는 나라라고 가정한다. 작년에는 반도체 2개를 생산해서 한 개는 국내에서 쓰고 나머지 한 개를 수출해서 그 돈으로 쌀 한가마니를 수입해 생활했다고 하자.
금년에 기술개발에 힘입어 반도체를 3개 생산하게 됐다면 GDP로 본 성장률은 50%가 된다.
그런데 반도체 국제시세가 4분의 1로 폭락하게 됐다. 이제는 반도체 2개를 수출해도 쌀을 반가마니밖에 사올 수 없다.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50%나 된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라고 생각하게 된다.
손에 남은 것이라곤 반도체 한 개와 쌀 반가마니밖에 안돼 작년보다 사정이 훨씬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역조건이 변하게 되면 GDP만으론 더 이상 국민들의 소득이나 복지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게 된다.
국민들의 소득이 반도체 한 개와 쌀 반가마니로 줄어든 것은 단순한 감(感)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고 숫자로 확인되는 사실이므로 이것을 제대로 대변해 줄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실은 오래 전에 학자들이 몇가지 대안을 제시해 두고 있었다.
국민소득 통계를 작성하는 한국은행에서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으므로 마침내 99년부터는 GNI(국민총소득)라는 새 지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GNI는 교역조건의 변동에 따른 국민소득 또는 복지면의 손실과 이득을 조정해 작성하는 지표다.
GDP와 이 지표의 움직임을 비교해 보면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에 관한 미스터리는 대부분 풀리게 된다.
금년 2분기중 GDP는 9.6% 성장한 반면 GNI로 본 성장률은 1.8%에 그쳤다.
반도체 수출가격이 폭락한 반면 원유 수입가격이 급등한 결과다.
기업이나 가계가 느끼는 불경기에 관한 감(感)이 새 지표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11월에 발표돼 봐야 알 일이지만 3분기에는 GNI로 본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정책 당국이 이 지표가 주는 메시지는 체감경기 정도로 무시하고 GDP성장률에만 매달려 ''지표경기는 아직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업의 채산성 악화와 가계의 소득감퇴에 대한 하소연은 이제 숫자로 확실하게 뒷받침되는 것이므로 더 이상 체감이라고 홀대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책 당국은 이번만큼은 선입견에서 벗어나 경기에 관한 모든 지표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충분한 대책을 강구함으로써 오판(誤判)과 실기(失期)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겠다.
< 본사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