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체의 상품분배를 맡은 부서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별로 제품수요를 예측,잘 팔릴만한 상품을 골라 매장에 내보내는 일이다.

이 부서 사람들은 공통된 경험칙(經驗則)을 갖고 있다고 한다.

바로 ''패션의 지방색''이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지역에 따라 잘 팔리는 스타일과 디자인이 다르고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색깔도 분명히 구분된다는 얘기다.

예부터 멋과 맛,풍류의 고장으로 유명한 광주는 패션에서도 그 ''끼''가 유감없이 나타난다고 한다.

빨강 분홍 보라 등 선명하고 강렬한 색상에 장식이 많이 달린 화려한 스타일의 옷이 어느 지역보다 많이 팔리는 곳으로 꼽힌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 몸매를 강조해주는 재킷이나 가슴선이 깊게 패인 블라우스 등 대담한 디자인은 광주지역에 내보내는 상품의 필수요소라고 디자이너들은 입을 모은다.

대구는 보수적이다.

남자는 점잖은 옷을,여자는 ''양갓집 규수''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며 색상은 남녀 모두 베이지와 갈색을,캐주얼보다는 정장을 선호하는 특징이 뚜렷하다고 한다.

버버리와 닥스,키이스 등 영국귀족풍 브랜드가 잘 팔리는 반면 알록달록한 컬러를 주제로 삼은 브랜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대전과 청주지역은 ''유명 브랜드 선호도''가 높다.

옷을 살때 ''모험''을 피하고 믿을만한 메이커를 선택하는게 고객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패션 관계자들은 느긋하고 여유있는 생활을 추구하며 안정지향적인 소비자들의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항구도시인 부산은 개방적이고 자유롭다.

한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고 어떤 차림이 유행이라고 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산사람들의 옷차림은 각양각색이다.

또 뒷골목 시장에서 밀수 외제품들을 일찍 접할 수 있기 때문인지 고가 해외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다른 곳보다 훨씬 높은 특징을 보인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독일의 문화사가인 막스 폰 뵌은 "패션은 한 시대의 표현"이라고 했다.

''왜 그때 그 사람이 그 옷을 입었는가''를 따져보면 당시의 권력 및 사회계급구조,문화양식 등 시대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얘기다.

''패션의 지방색''에서도 비슷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