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원용 <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wykwon@sdi.re.kr >

철학자는 개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 판단적 준거로서 진·선·미를 꼽는다.

그러나 이 3박자를 두루 갖춘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이 가장 피로해지신 마지막날(6일째)에 인간을 만들었다니까.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할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이상은 자유 평등 정의다.

셋 중에서 아무리 지나쳐도 나쁠 게 없는 ''정의''야말로 으뜸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

세속적인 삶이 추구하는 목표는 나이가 들수록 절실해지는 무병장수를 빼놓는다면 부(富) 권력 혹은 명예이다.

근대화 이후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 병폐는 엘리트층이 이 세가지를 한꺼번에 거머쥐려는데 있다.

우리 주변에는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곧장 정치판에 뛰어들거나,권력을 잡게 되면 작위적으로 명예사냥에 나서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부정한 수단이 아닌 바에야 대기업을 만들고 열심히 돈 벌어 값있게 쓰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예컨대 호사스런 묘소를 만드는 것보다는 대학이나 연구소에 기부하는 모습이 훨씬 돋보인다.

정치는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쓰는''기술을 닮았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정경유착이 골칫거리다.

어느 해학가는 ''정치인이란 권력을 탐닉하는데 바빠 정직할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꼬았다.

역시 아무리 추구해도 지나치지 않는 목표는 명예인 것 같다.

모두에게 추앙받고,평판이나 인기가 높은 거창한 명예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명성과 신망을 얻는다면,이 또한 긍지이며 소중한 명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학계 법조계 의료계 언론계 할 것 없이 모조리 존경받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위선적이고 희화적으로 비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각각의 전문성이 신뢰받지 못하고 직업적 윤리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사회적 실천이 정직하지 못한다면 명예도 실추되고 권위도 잃게 마련이다.

가령 교량공사를 맡은 엔지니어가 구조적인 부조리 때문에 설계대로 시공할 수 없다면 명예를 걸고 맞서야 한다.

안 보이는 부분이라고 적당히 야합한다면 나중에 대형사고가 터져 그야말로 ''혼을 담는''시공이 되기 십상이다.

부와 권력 명예라는 가치체계에도 삼권분립이 필요하다.

과욕없이 한가지씩 청렴하게 추구하는 귀감이 있다면 우리를 더욱 살 맛나게 할 것이다.

사후에 자신의 시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깨끗이 버리고 간 중국의 ''덩샤오핑''에게 이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