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蔡萬植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아저씨! 경제라는 것은 돈 모아서 부자되라는 거 아니요? 그런데 사회주의란 것은 모아둔 부자의 돈을 뺏아쓰자는 거 아니요?"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사회주의운동을 하다가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는 아저씨에게 나이 어린 오촌 조카가 따지고 든다.
36년 발표된 채만식의 단편 ''치숙(痴叔)''은 무능한 인텔리와 체제에 순응해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조카의 의식상 괴리를 풍자적으로 희화화한 작품이다.
백릉(白菱) 채만식(蔡萬植,1902~50)은 전북 옥구군 임피에서 부농의 7남2녀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중앙고보 3년 재학중 일본 와세다대학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유학했다가 이듬해 귀국하고 말았다.
24년 단편 ''세 길로''를 ''조선문단''에 발표해 문단에 등단한다.
25년이후 동아 조선 등 신문 잡지사의 기자로 전전하다가 36년부터는 창작에 전념했다.
낙향했다가 이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작품은 15편의 중·장편소설,70여편의 단편,30여편의 희곡 촌극 시나리오 방송극,40여편의 문학평론,1백40여편의 수필 및 잡문 등 시를 제외한 전 장르에 걸친 방대한 양이다.
그중 장편 ''탁류''(37년) ''천하태평춘''(38년)과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34년) ''치숙''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채만식문학의 핵심은 주제를 일관되게 사회의 현실인식을 통해 파악하고 풍자라는 기법을 써서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증인이 되려한 데 있다.
하지만 끝까지 지사가 되지 못하고 해방직전 일제에 협력한 것이 흠으로 남아 있다.
그가 뒤늦게 70년대 말에 와서야 집중조명을 받는 것도 실은 그때문이다.
그의 50주기를 맞아 28일부터 서울에서는 민족문화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 주관으로 심포지엄,독후감쓰기대회 등 추모문학제가 열린다.
그의 고향이자 ''탁류''의 무대인 군산에서는 오페라 ''탁류'' 공연준비가 한창이고 내년 1월에는 채만식문학기념관도 준공된다고 한다.
금년은 한국현대문학사의 높은 봉우리인 김동인 현진건의 탄생 1백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우리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36년 발표된 채만식의 단편 ''치숙(痴叔)''은 무능한 인텔리와 체제에 순응해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조카의 의식상 괴리를 풍자적으로 희화화한 작품이다.
백릉(白菱) 채만식(蔡萬植,1902~50)은 전북 옥구군 임피에서 부농의 7남2녀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중앙고보 3년 재학중 일본 와세다대학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유학했다가 이듬해 귀국하고 말았다.
24년 단편 ''세 길로''를 ''조선문단''에 발표해 문단에 등단한다.
25년이후 동아 조선 등 신문 잡지사의 기자로 전전하다가 36년부터는 창작에 전념했다.
낙향했다가 이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작품은 15편의 중·장편소설,70여편의 단편,30여편의 희곡 촌극 시나리오 방송극,40여편의 문학평론,1백40여편의 수필 및 잡문 등 시를 제외한 전 장르에 걸친 방대한 양이다.
그중 장편 ''탁류''(37년) ''천하태평춘''(38년)과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34년) ''치숙''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채만식문학의 핵심은 주제를 일관되게 사회의 현실인식을 통해 파악하고 풍자라는 기법을 써서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증인이 되려한 데 있다.
하지만 끝까지 지사가 되지 못하고 해방직전 일제에 협력한 것이 흠으로 남아 있다.
그가 뒤늦게 70년대 말에 와서야 집중조명을 받는 것도 실은 그때문이다.
그의 50주기를 맞아 28일부터 서울에서는 민족문화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 주관으로 심포지엄,독후감쓰기대회 등 추모문학제가 열린다.
그의 고향이자 ''탁류''의 무대인 군산에서는 오페라 ''탁류'' 공연준비가 한창이고 내년 1월에는 채만식문학기념관도 준공된다고 한다.
금년은 한국현대문학사의 높은 봉우리인 김동인 현진건의 탄생 1백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우리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