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고생이 심해서였을까.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나 이금희(34)씨는 그 사이 얼굴이 홀쭉해진 모습이었다.

정확히 11년8개월.강산이 변한다는 세월동안 몸담았던 KBS의 울타리를 떠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을게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어요. 많은 분들께 송구스럽지만 제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방송일과 공부를 함께 하기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늘상 보아온 수더분한 인상과 정갈한 말솜씨는 그대로였다.

10년넘게 다니던 방송사를 떠난 뒤의 기분은 어떨까.

"첫 방송의 기분이 어떨까 저도 무척 궁금했는데,하는 일이 똑같아서인지 의외로 담담하데요"

프리랜서를 선언한 이후에도 그는 "아침마당"과 라디오 "이금희의 가요산책"의 진행을 그대로 맡고있다.

하지만 바뀐 점도 적지않다.

이제 KBS에서 그가 머무는 곳은 아나운서실이 아니라 "아침마당"의 회의실이다.

그곳에서 이메일도 보내고 신문에 기고하는 원고를 쓰기도 한다.

낮시간에는 수 년동안 마음만 먹었을 뿐 한번도 실행하지 못했던 헬스클럽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살이 좀 빠진 것 같아요"

강의 섭외와 CF출연 제의 등 처리해야 일들이 부쩍 많아지면서 매니저가 생긴 것도 변화 중 하나다.

그를 뭐라 불러야 할 지 잠시 고민이었다.

이제 더 이상 아나운서가 아니니까,MC 이금희?.생경한 느낌이지만 사실 그가 KBS 입사 후 줄곧 해온 일은 아나운서보다는 프로그램 진행자에 가까웠다.

"입사 이래 파업할 때 뉴스 아나운서를 대신 해본 게 전부였어요.
처음부터 일반 프로그램의 MC를 주로 맡았어요"

정감넘치는 말투와 포근한 인상이 드라마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드라마 출연제의가 온다면 한번 도전해 볼 마음은 있는데요.
출연제의가 안들어 오네요"라며 심성좋게 웃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따라 찾아간 방송국에서 "예쁜 언니"(아나운서)를 본 후 방송인을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금희씨.아나운서 시절은 물론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까지 방송반으로 활동할 정도로 방송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그는 이제 방송인생의 전환점에 섰다.

지난 10여년의 방송활동이 KBS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배경으로 쌓아온 것이라면 이제 철저하게 홀로서야 하는 들판으로 나온 셈이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저도 함께 행복해지는 방송일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이제 홀가분한 위치에서 저를 아껴준 윗세대의 시청자들과 젊은 시청자들을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하는 방송인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이금희씨 아세요,그 아나운서가 KBS를 그만 뒀대요" "아이구,그 맏며느리같이 수더분하게 생긴 아나운서 말이죠.잘 되야 할 텐데요. 그런데 시집은 언제 간데요?"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