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불은 살아있다"

국내 처음으로 불영화에 도전한 "싸이렌"(감독 이주엽.제작 선우엔터테인먼트)은 적어도 불의 위력만큼은 성공적으로 구현해낸다.

찬란한 혀를 낼름대며 건물을 집어삼키는 "화마"의 위세는 당당하고 거침없다.

수십가지 모양새와 빛깔을 뽐내는 거대한 불길은 생명력으로 충만한채 타오른다.

상대적으로 "드라마"가 약했다는 지적이 많지만 할리우드 기술력을 도입해 만들어낸 불이나 차량충돌 폭발등의 특수효과는 분명 괄목할 성과다.

큰 틀은 론 하워드 감독의 "분노의 역류"와 닮았다.

무서운 화재현장을 배경으로 불과 맞서 싸우는 119 소방대원들의 우정과 사랑 갈등과 화해같은 인간적인 드라마를 풀어낸다.

임준우(신현준)와 강 현(정준호)대원은 친구사이다.

저돌적인 행동주의자 준우는 번번이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성적인 원칙주의자 현에게 준우의 돌출행동은 무모할 뿐이다.

비극을 예고하는 갈등구조는 겹겹으로 놓인 복선들에 의해 증폭되고 성장한다.

과거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강박증에 시달리는 준우.

그를 사랑하는 여자(장진영).

과거 등반중 어쩔수없이 자일을 끊어 선배를 불구로 만든 현.

화재현장에서 가족을 잃은후 현에게 그릇된 복수심을 품은 남자(선우재덕).

각각의 이야기는 얽히고 얽혀 준우의 목숨이 걸린 마지막 비극을 준비한다.

"불"외에도 작품은 소방대원들의 노고를 생생하게 그려보인다.

배우들의 진지하고 성의있는 연기도 높이 살만하다.

신현준은 이번에도 예의 "이글대는" 눈빛을 앞세우지만 "인물"의 전달은 전작들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정준호나 장진영이 안정적인 연기로 무게중심을 잡았다.

여러 미덕에도 불구하고 "싸이렌"은 아쉬움을 많이 남긴다.

준우의 성격적 특성을 뒷받침할 과거에 대한 설명이 인색한 나머지 그의 고뇌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감동을 이끌어내야할 드라마는 지나치게 익숙하고 공식화된 루트를 따라 나간다.

인물이나 사건전개도 예측가능한 정형성에 갖혀있다.

관습적인 길은 안전을 담보하겠지만 새로운 감동을 창출하진 못한다.

자본력이나 장비부족을 감안하더라도 10년전에 만들어진 "분노의 역류"에 견주어 진일보한 면모를 찾아볼 수 없는 점역시 관객에게는 미진함을 안긴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