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백인홍이 탄 차는 공장으로 향했다.

그는 오늘도 공기총을 옆에 끼고 공장 안에서 잘 예정이었다.

노조의 파업에 대항해 폐업을 선언하고 공장문을 폐쇄한 상황에서 혼자서라도 끝까지 공장의 시설물을 지킬 각오였다.

파업이 장기화하여 회사가 부도나는 위험이 따르더라도 노조가 자신에게 입힌 명예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업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 과거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강간죄로 잘못 고발되었던 사건을 근거로 하여,나이 어린 여성근로자들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경영책임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인물 내용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탄 차가 50여? 전방 공장 정문이 보이는 곳에 왔을 때,정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곳에 정차한 후 차에서 내려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공장 정문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서는 백운직물의 전무 및 공장장인 변희성을 비롯한 사무직 관리직원들이 여러 겹으로 진을 치고 있고,바깥쪽에서는 노조원들이 ''위장폐업 철회''라는 구호를 외치며 무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IMF사태의 심각성을 느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인지 현재 나라경제가 커다란 치명타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노조원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백인홍은 다시 차로 돌아가 공기총을 꺼냈다.

그는 공기총을 손에 들고 뚜벅뚜벅 공장 정문으로 향했다.

한 사내가 어둠 속에서 뛰어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손에 든 게 뭐요?"

"당신 누구요?"

"경찰이오.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근무중이오.손에 든 게 뭐요?"

사복 경찰이 다시 물었다.

"공기총이오.회사의 사주로서 공장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거요"

백인홍이 공기총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당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노조원을 쏘겠다는 거요?"

"아니오.국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파괴분자를 막기 위한 거요.

당신 경찰들이 할 일을 내가 대신하는 거요"

백인홍은 사복 경찰 옆을 지나 정문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정문 앞에 모여 구호를 외치던 노조원들이 그들 사이를 비집고 앞만 보며 지나가는 백인홍에게 대들듯이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백인홍은 굳게 닫힌 정문 앞까지 왔다.

"지금 최 이사가 열쇠를 가지러 갔습니다.

곧 올 겁니다"

정문 안쪽에서 변희성이 백인홍의 신변에 불안을 느꼈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아무도 공장에는 들어가지 않았지요?"

백인홍이 물었다.

"두 사람이 공장 내 컴퓨터실로 침입했습니다.

석유통을 가지고 들어갔는데,앞으로…"

변희성이 손목시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45분 이내에 공장 문을 열지 않으면 컴퓨터실을 폭파하겠다고 합니다.

둘 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아닌 외부 사람입니다"

백인홍의 주위에 몰려 있던 노조원들이 더 요란스럽게 구호를 외치며 조여오다가 어느 순간 그를 밀어붙였다.

백인홍은 정문에 몸을 부딪히면서 들고 있던 공기총을 땅에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