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일의 그림읽기] (10) 권옥연 '부인상' .. 신비스런 책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국립현대미술관이 최근 ''2001 올해의 작가''로 권옥연(77·예술원 회원) 화백을 선정했다.
근대미술관 성격의 덕수궁 미술관(분관)이 담당해야 할 전시특성에 맞춰 원로 작가인 권 화백을 선정,2001년에 덕수궁에서 대대적인 전시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권 화백은 일본 제국미술학교를 나와 1950년대 후반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다.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들었지만 초기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회색톤의 색감을 바탕으로 신비감과 초현실적 분위기의 화풍을 보여준 현대미술의 프런티어.
그의 대표작 ''부인상''(캔버스에 유채·80X65㎝)은 권 화백이 1951년 결혼기념으로 부인 이병복(연극인)씨를 그린 것이다.
한국전쟁와중에 그린 것이지만 낭만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작고한 미술평론가 이일씨는 ''부인상''을 권옥연 회화 양식의 첫 걸음으로 보고 있다.
권 화백이 세잔과 고갱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양식을 정립하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전통적인 모델링을 무시한 인물상의 형태와 그것에 걸맞은 대담한 색면 대비다.
칠흑같은 검은 모발과 강렬하면서도 억제된 붉은 스웨터,그리고 짙은 청색의 대조적인 색상 대비는 그 자체로도 이미 밀도있는 색채 환각(幻覺)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화면 전부를 차지하다시피한 인물과 그 배경으로서의 풍경도 인물 못지않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누가 그랬던가.
''그림은 사람''이라고.우리는 여기서 권 화백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인을 모델로 한 것은 북쪽이 고향인 작가에게 남다른 심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이 역작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여겨진다.
권 화백과 이병복씨의 사랑은 그때 그 시절 문화계 화제였다.
파리유학을 마치고 온 1960년대 작업은 파리의 앵포르멜에 영향을 받아 한층 깊이 있는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1970년을 전후해서 이른바 사실화로 되돌아가 ''어른들의 동화''처럼 우리에게 먼 옛이야기,달과 산,나비와 꽃,새와 나무가 서로 밀어를 나누는 정담을 들려주고 있다.
그의 정감 넘치는 비현실적 세계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억제된 단색조의 화면으로 해서 더 한층 운치를 지닌다.
권 화백 그림을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서화골동에 관한 안목이다.
눈이 높을 뿐 아니라 수집을 많이 해 명품이 수두룩하다.
영조 부마집이었다는 금곡의 아흔아홉간 집을 사들여 개축한 미술관에 그의 애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 하나 권 화백의 노래 실력이다.
그는 노래를 부를 만한 자리면 사양하지 않고 한곡조 뽑는다.
주로 가곡이다.
알고보니 그의 선대인이 유명한 음악가인 권진기씨였고 그도 성악 지망생이었다.
월간 art 발행인
근대미술관 성격의 덕수궁 미술관(분관)이 담당해야 할 전시특성에 맞춰 원로 작가인 권 화백을 선정,2001년에 덕수궁에서 대대적인 전시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권 화백은 일본 제국미술학교를 나와 1950년대 후반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다.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들었지만 초기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회색톤의 색감을 바탕으로 신비감과 초현실적 분위기의 화풍을 보여준 현대미술의 프런티어.
그의 대표작 ''부인상''(캔버스에 유채·80X65㎝)은 권 화백이 1951년 결혼기념으로 부인 이병복(연극인)씨를 그린 것이다.
한국전쟁와중에 그린 것이지만 낭만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작고한 미술평론가 이일씨는 ''부인상''을 권옥연 회화 양식의 첫 걸음으로 보고 있다.
권 화백이 세잔과 고갱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양식을 정립하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전통적인 모델링을 무시한 인물상의 형태와 그것에 걸맞은 대담한 색면 대비다.
칠흑같은 검은 모발과 강렬하면서도 억제된 붉은 스웨터,그리고 짙은 청색의 대조적인 색상 대비는 그 자체로도 이미 밀도있는 색채 환각(幻覺)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화면 전부를 차지하다시피한 인물과 그 배경으로서의 풍경도 인물 못지않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누가 그랬던가.
''그림은 사람''이라고.우리는 여기서 권 화백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인을 모델로 한 것은 북쪽이 고향인 작가에게 남다른 심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이 역작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여겨진다.
권 화백과 이병복씨의 사랑은 그때 그 시절 문화계 화제였다.
파리유학을 마치고 온 1960년대 작업은 파리의 앵포르멜에 영향을 받아 한층 깊이 있는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1970년을 전후해서 이른바 사실화로 되돌아가 ''어른들의 동화''처럼 우리에게 먼 옛이야기,달과 산,나비와 꽃,새와 나무가 서로 밀어를 나누는 정담을 들려주고 있다.
그의 정감 넘치는 비현실적 세계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억제된 단색조의 화면으로 해서 더 한층 운치를 지닌다.
권 화백 그림을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서화골동에 관한 안목이다.
눈이 높을 뿐 아니라 수집을 많이 해 명품이 수두룩하다.
영조 부마집이었다는 금곡의 아흔아홉간 집을 사들여 개축한 미술관에 그의 애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 하나 권 화백의 노래 실력이다.
그는 노래를 부를 만한 자리면 사양하지 않고 한곡조 뽑는다.
주로 가곡이다.
알고보니 그의 선대인이 유명한 음악가인 권진기씨였고 그도 성악 지망생이었다.
월간 art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