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90년대 환율대립 심각" .. 사카키바라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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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대장성 재무관이 90년대 일본과 미국간 무역분쟁과 환율공방,거기에 얽힌 비화 등을 담은 회고록을 펴냈다.
사카키바라는 지난 90년대 일본의 대외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인물.
특히 엔·달러 환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미스터 엔''으로 불렸다.
지난해 7월 공직생활에서 물러난 후 올 연초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후보에까지 올랐다.
''일본의 금융위기와 미국의 경험''이라는 회고록에서 그는 지난 90년대 양국이 교역과 환율정책에서 사사건건 대립했으며 이는 양국 모두의 자국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그는 90년대 미·일 경제관계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별로 양국의 외환정책 결정을 둘러싼 비화를 소개했다.
첫번째는 지난 94~95년의 클린턴 행정부 초기로 일본의 엔고가 본격화되던 때다.
당시 미국에서는 미키 캔터 무역대표를 비롯 ''약한 달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득세했었다.
두번째는 96~97년으로 ''강한 달러''를 지지한 로버트 루빈이 재무장관으로 재직하던 달러화 강세시기이다.
마지막으로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제위기 시기이다.
사카키바라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국제환율을 조절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한 일이 돼 가고 있다''는 결론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김선태 기자 orca@hankyung.com
사카키바라는 지난 90년대 일본의 대외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인물.
특히 엔·달러 환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미스터 엔''으로 불렸다.
지난해 7월 공직생활에서 물러난 후 올 연초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후보에까지 올랐다.
''일본의 금융위기와 미국의 경험''이라는 회고록에서 그는 지난 90년대 양국이 교역과 환율정책에서 사사건건 대립했으며 이는 양국 모두의 자국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그는 90년대 미·일 경제관계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별로 양국의 외환정책 결정을 둘러싼 비화를 소개했다.
첫번째는 지난 94~95년의 클린턴 행정부 초기로 일본의 엔고가 본격화되던 때다.
당시 미국에서는 미키 캔터 무역대표를 비롯 ''약한 달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득세했었다.
두번째는 96~97년으로 ''강한 달러''를 지지한 로버트 루빈이 재무장관으로 재직하던 달러화 강세시기이다.
마지막으로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제위기 시기이다.
사카키바라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국제환율을 조절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한 일이 돼 가고 있다''는 결론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김선태 기자 or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