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지금쯤 단풍이 곱게 들었지?

서울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밤과 낮이 바뀌면,마음도 요술을 부리듯이 방향을 바꾸어 서울을 향해 돌아앉는가 보다.

그렇게도 떠나고 싶던 연인과 막상 헤어졌을 때 마음이 물 적신 솜처럼 내려앉듯이,정든 곳은 그렇게 우리를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눈을 감고 떠오르는 게 사람일 경우보다 걷던 곳,길가에 피었던 작고 하얀 꽃,그리고 창 밖으로 바라보던 붉고 노란 단풍잎이다.

사람의 정이란 덧없지만 장소는 늘 변함이 없어서일까?

신장을 열면 아직도 붉은 흙이 묻은 신발 두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둘 다 아주 크다.

언젠가 약수터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때 두 사람이 신었던 신발이다.

오래되어 말랐지만 흙은 여전히 몇년전 그날의 일들을 말해준다.

식구들 모두 산 골짜기에 있는 약수터에 올라갔다 오던 날 우리는 버려진 굵은 나뭇가지를 꺾어 비탈길을 짚으며 내려 왔다.

검고 굵은 그 나뭇가지도 여전히 신장 옆에 길게 서있다.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서있겠다는 듯이.

등산화에 묻은 흙을 보면,그걸 신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서 더 있다 가려고 했지만 자신이 받은 생명을 아름답게 태우고 먼길을 떠난 사람들,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육신의 고통도 내보이지 않고 가능한 한 옆 사람들을 웃기려고 애쓰면서 떠난 사람들이 생각난다.

산다는 것은 위대한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두고두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떨어진 낙엽들이 차곡차곡 쌓여 발길에 머문다.

왜 우리는 죽어가는 나뭇잎에 그토록 매혹될까?

추하지 않게 아름답게 사라져가면서 그 다음 생명을 위해 거름이 되는 것,낙엽은 그런 것이다.

숲만큼이나 늙은 곰을 보려면 나침반까지도 내려놓고 숲으로 들어가라 하고,죽인 사냥감의 피를 어린 주인공의 이마에 발라주면서 한 생명을 빼앗은 책임을 잊지 말라던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이 생각난다.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도 중간도 아니요,마지막 순간이라고 가르쳐주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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