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98년 아시아 경제위기의 시발점이 됐던 태국의 경우 태국정부의 필사적인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미국 달러에 대한 바트화 환율이 98년 외환위기 당시 수준의 80% 안팎을 기록하고 있는가 하면 필리핀 페소화는 연일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필리핀의 경우 군부 쿠데타설이 나도는 가운데 이미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시작돼 국제금융계에선 필리핀발(發) 제2의 아시아 위기설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월가에서는 아르헨티나가 미국정부와 금융기관들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것이란 소문이 돌며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남미 위기와 동시에 발생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도 25일 "이머징마켓 전반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해 현 사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대만 중국 일본도 위기 상태=이번 위기가 현재화된다면 98년 당시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대만과 중국 일본까지 격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만의 경우 올해 들어 타이베이증시의 가권지수가 거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한 가운데 달러 대비 대만달러의 가치가 이미 10%가까이 하락했고 이런 추세는 갈수록 더 악화되는 모습이다.

중국의 경우는 금융권의 회수불능 부실채권액이 전체 여신의 25∼40% 안팎에 이르고 4대 은행의 부실채권액은 중국 연간 국내 총 생산의 20∼30%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지금까지의 ''경제개혁''작업이란 것은 고작 부실채권을 출자로 전환,장부상으로만 부실을 털어냈을 뿐이지 기업들의 비효율 경영은 그대로다.

따라서 주가가 하락할 경우 중국 경제전반이 공황상태로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일본의 경우 기업 부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도쿄 금융가에선 금리수준이 1%포인트만 높아져도 일본 전체 기업의 25%가 타격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지난 10여년간의 불황 속에서 경기부양책을 지속해 온 일본 정부는 전후(戰後) 산업선진국 역사상 유례없는 부채를 누적하고 있다.

◆기대할 것 없는 유럽·미국=이런 가운데 아시아의 각 국은 이제 더 이상 유럽이나 미국을 ''성장의 엔진''역할로 기대하기 어렵게 돼 가고 있다.

유럽은 연일 추락하는 유로화 가치를 방관만 하고 있다.

오히려 한쪽에선 이를 ''유럽의 요새화''와 유럽 기업들의 ''수출증대 계기''로 삼는 듯한 모습이 엿보이고 있다.

유럽은 특히 1996년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를 출범시킨 이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어 아시아 국가들의 유럽에 대한 그 어떠한 기대도 갖기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경우는 정크본드 가산금리가 98년 10월 러시아 채무변제 불이행 선언 당시 수준을 넘어서 1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신용경색 현상''이 심각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75% 수준이던 전체 도산 기업들 중 북미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의 도산 비중이 올해 들어서는 95% 수준으로 높아져 본토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에 미국 내 투자자금이 주식형 뮤추얼펀드에서 급속히 이탈하면서 그 불똥이 아시아와 다른 이머징마켓으로 튀고 있다.

여기다 미국 의회는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를 피해 미국 기업들에 분배해 주는 이른바 ''버드 수정안''을 지난 18일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킴으로써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

이 문제는 대해서는 일본과 유럽연합이 ''연대 대응''할 방침을 표명한 가운데 일본이 WTO에 제소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자칫 ''범세계적 무역갈등''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신동욱 전문위원 경영博 shin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