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실력자인 조명록 인민군차수의 워싱턴 방문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지난 14일,미국 언론들은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한 인물의 부음을 조그맣게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며칠 뒤 세편의 사설중 하나를 이례적으로 이 인물에게 할애했다.

거스 홀(Gus Hall).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평생을 공산주의 활동에 몸바친 사람이었다.

1910년 미네소타주 북부에서 태어난 그는 10대에 공산당에 가입,21살에 공산주의 행동주의자들의 양성소인 모스크바의 레닌대학에서 공부했다.

30년대는 그에게 꿈같은 시기였다.

자유방임주의적인 자본주의는 교과서대로 ''대공황''으로 막을 내릴것 같았고 스탈린은 파시즘에 대항,인민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그 뿐.

그 뒤 다가온 반세기는 공산주의자로 살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반공이데올로기인 매카시즘이 몰아쳤다.

''폭력혁명''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로 8년간 옥살이를 했다.

형무소에서 소련군대의 부다페스트 침공과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을 지켜봤다.

59년 공산당 지도자가 됐으나 그가 목도한 것은 프라하의 봄,소련의 경제적인 쇠퇴,베를린 장벽의 붕괴였다.

하지만 그는 볼셰비키 신념을 꺾지 않았다.

그는 미국 대통령선거에 네번 도전했으나 76년에 5만9천표를 얻은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인 미국과 맞섰다.

자본주의 다국적기업 세계화 등의 문제점을 다룬 그의 저서들은 제3세계 행동주의자들의 실천교본이 됐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공산주의 파괴범''으로 저주한 그는 ''가장 모범적인 국가는 북한''이라고 단언했다.

미국과의 전쟁 등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공산주의를 지킨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찬사까지 덧붙였다.

그가 죽은 며칠 뒤 ''가장 모범적인'' 국가의 지도자는 ''제국주의''의 전도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만나 밝게 웃으며 건배를 했다.

그가 조금 더 살았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세상의 변화를 외면하고 한평생 공산주의 외길만 걸어온 거스 홀.

그는 영웅인가 아니면 돈키호테인가.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