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찬 전 국장의 자살 소식으로 침통한 분위기가 감돌던 1일 오후.금융감독원 기자실에 금감원의 한 중간간부가 쓴 편지가 전해졌다.

허세원 기획조정국 수석전문역(부국장급)이 보낸 ''명확한 사실 확인없이 기사를 쓰는 일부 기자들께 드리는 편지''였다.

그는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지난 10여일동안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의 고통과 분노,억울함을 참을 수 없어 펜을 들었다고 했다.

물론 그 역시 장 국장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많은 직원들과 함께 비난했다고 토로했다.

가장 깨끗해야 할 감독기관이 비리에 연루돼 물의를 일으킨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는 데에도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보도 뒤 이를 정정하는 기사는 전혀 볼 수 없었고 한 사람의 잘못을 놓고 금감원 전체가 그런 것처럼 비난하는 건 참기 어려웠다고 항변했다.

아이들이 "혹시 우리 아빠가 TV에 나온 일과 관련이 없나" 하는 듯한 조심스런 눈길을 보낼 때의 심정을 아느냐고 반문했다.

이웃들의 차가운 눈길,친지들의 "너는 괜찮냐?"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분노를 느꼈다고도 했다.

그의 편지는 사실상 1천4백여 금감원 임직원들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느낌이다.

기자가 만나본 직원마다 한숨부터 내쉬었고 원망에 찬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그 한숨과 원망에는 동료가 물의를 빚은데 대한 자괴심과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데 대한''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더욱이 그동안 검찰 주변에서 제기된 의혹이 어느 것 하나 사실로 입증된 게 없다는 데 이르면 금감원 임직원들의 착잡한 감정은 더욱 농도가 짙어진다.

장 국장의 비리혐의만 유서에서 드러났을 뿐 금감원의 조직적인 은폐·축소 의혹이나 추가 연루자는 드러난게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장 국장의 죽음을 대하는 금감원 임직원들의 반응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금감원 임직원들은 장 국장이 죽음에 이른 것이 안타깝지만 오히려 유서에서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보호하려고 애쓴 부분에서 숙연해하는 표정이다.

직원들은 장 국장의 행위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빈소가 마련되면 찾아가 분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오형규 경제부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