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

둥근 탁자에 둘러 앉은 5명의 사람들이 사업계획서를 펼쳐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벤처기업을 창업하려는 김계환(34)씨와 이 벤처에 종잣돈을 지원하고 싶은 엔젤투자자들의 회의다.

지난95년 인터넷 업계에 뛰어든 김 씨는 두 세번의 사업 경험을 갖고 있다.

얼마전까진 꽤 잘나가는 닷컴기업에서 사업개발과 마케팅담당 사장으로 뛰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신규 투자자금을 끌어들이지 못하면서 김씨는 마케팅부문 직원 20여명과 함께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자신의 사업계획을 직접 실현시키는 동시에 다니던 회사도 살리기 위해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김씨는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사업계획서 작성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한국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만 아직도 벤처기업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며 "지금이야말로 진짜 벤처가 뭔지를 보여줄 때"라고 말했다.

코스닥시장 침체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벤처업계는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벤처가 지닌 미래의 성공가능성을 의문시하는 인식이 확산되는 데다 도덕성 문제까지 겹치면서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그러나 김씨처럼 ''성공 벤처''의 꿈을 갖고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벤처기업가는 주가 뻥튀기 등 변칙 방법으로 한 몫을 챙기려는 사람''이라는 비난의 화살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무기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진 못하고 있다.

18년동안 공기업에서 근무하다 지난해말 퇴직한 유모(45)씨.

직장생활을 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꼼꼼하게 정리해 사업계획서를 만든 그는 퇴직과 동시에 벤처기업을 차렸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신규 프로젝트로 추진하기 위해 그는 여러 차례 보고서를 올렸었다.

그러나 회사측이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자 직접 사업화에 나선 것이다.

벤처창업 이후 꼬박 10개월을 제품 개발에만 매달린 끝에 그는 최근 멀티미디어시대에 걸맞은 시제품을 완성했다.

이제 남은 건 판매망 구축 등 실제 마케팅을 통해 매출을 거두는 일이다.

"벤처기업이라는 것만으로 손쉽게 ''묻지마 투자''를 받았던 시절과는 달리 벤처투자 분위기가 너무 얼어붙어 있다"고 말하는 유씨는 "벤처 특유의 빠른 의사결정과 독특한 기술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

''벤처''는 분명 한국경제에 새로운 기회와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다.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자신있게 사업에 뛰어들 수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벤처 창업을 통해 기업가정신을 실현시키는 자체를 높이 사는 사회분위기도 생겨났다.

테헤란밸리를 중심으로 벤처발(發) SOS 신호가 지금 울리고 있다.

이는 일부 벤처기업들의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렵사리 만들어 놓은 한국의 벤처 인프라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우(愚)를 범해선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벤처는 여전히 한국 경제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