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석 PwC 전략그룹 수석컨설턴트>

e-비즈니스라고 하면 흔히 통신,소프트웨어,미디어,생명공학 등 첨단 산업에서만 적용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가장 전통적이며 인터넷과는 무관하게 보여지는 대표적 굴뚝산업인 자동차 산업에서도 e-트랜스포메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에서의 e-트랜스포메이션이란 e-비즈니스로 산업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물리적 자본이 줄어들고 역삼각형의 브랜드 소유 기업으로 바뀌는 등 기존과는 전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수년동안 자동차 업체들은 공급사슬 관리,신모델 출시 기간의 단축,글로벌 생산 통합 등에 주력했다.

대규모 합병을 통해 거대 자동차 업체가 등장했고,그 결과 자기 상표를 부착한 완성차 업체 브랜드가 줄어들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OEM(주문자 상표를 부착하는 제품 생산)모델로부터 브랜드 부착 모델(Vehicle Brand Owner)로 변모해가고 있다.

포드,GM,다임러 크라이슬러와 같은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부품 대부분을 아웃소싱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유통망이나 딜러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 생산 방식의 전형은 헨리 포드가 고안한 수직적으로 결합된 "River Rouge Ford Plant"였다.

철판,목재,가죽 등의 원재료가 공장의 한쪽 끝에서 들어가면,반대편 끝에서는 포드 자동차 한 대가 생산되어 나왔다.

20세기 내내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대부분의 산업에 적용됐고,이때의 주안점은 고객의 반응보다는 제품 설계와 생산에 있었다.

바로 "검은 색이라면,당신이 원하는 대로(Any color you want,as long as its black.)"라는 표현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포드가 검은색을 선택한 것은 고객들이 이를 선호했기 때문이 아니며,오히려 검은색은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싼 가격의 색상도 아니었다.

검은색은 운영상의 효율성 제고라는 지극히 포드 내부적인 욕구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검은 색은 가장 빨리 건조되기 때문에 생산 프로세스를 단축시킬 수 있었고,그 결과 생산과 배송 사업부의 성과를 높일 수 있었다.

1950년대가 되면서 자동차 산업에서도 전문화가 진전됐다.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는 부품 사업부를 설립하거나 엔진,변속기,브레이크와 현가 장치,차체,내장,전장,부품 조립 등을 담당하는 사업부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 업체가 보다 나은 기술로 효율적인 제품을 제공하게 됐다.

이에 자동차 업체의 사업부와 외부 업체가 경쟁하게 됐고,이 과정에서 일부 부품이 외부 업체에 의해 조달됐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동차 업체의 외부 공급업체 의존도는 점점 심화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자동차 브랜드 소유 기업들은 시장에서 수익이 가장 크고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분야에만 힘을 쏟고,나머지 분야는 점점 외부 아웃소싱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이처럼 변화된 이유는 자동차 산업이 수십년동안 경(輕)트럭을 제외하고는 자동차 생산에서 거의 이익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의 주된 수익원은 바로 고장 수리와 사후 관리,그리고 자동차 관련 금융업이다.

따라서 자동차 업체들이 브랜드 부착 모델로 옮겨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자동차 업체들은 제휴를 통해 생산의 대부분을 아웃소싱하고는 대신 고객 대응,자동차 설계,고장 수리,사후 관리에만 역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인터넷을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판매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거대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브랜드 부착 모델로 변모해 가고 있다.

GM의 경우 "GM 마켓 사이트"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는데,여기에는 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20만여개의 품목과 5개의 참여 기업이 보유한 공급업체 목록이 포함돼 있다.

"마켓 사이트"는 소프트웨어 업체인 커머스원사의 제품인 "마켓 사이트 포털 글로벌 솔루션"을 기반으로 구축돼 주문에서 지불까지 공급업체와의 모든 거래 과정을 자동적으로 처리해 준다.

포드사 역시 "오토익스체인지(AutoXchange)"라는 웹 사이트를 통해 주요 공급자들의 공급사슬을 자사의 네트워크 속으로 통합하고 있다.

포드사는 오라클사와의 합작 제휴를 통해 연간 8백억 달러에 이르는 자사 공급사슬과 3천억 달러에 이르는 외부 아웃소싱 부품 공급업체와의 공급사슬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거대 자동차 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자동차 부품 거래 사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매 단가 인하라는 이점을 꼽을 수 있겠다.

구매 단가를 인하하기 위해 역경매가 도입되고 있지만,구매단가 인하는 실제로는 가장 영향력이 적은 동인이다.

보다 중요한 동인은 바로 경쟁력 있는 차량 브랜드를 소유한 기업으로의 변모와 충성도 높은 고객 기반 확대이다.

이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만성적 공급 과잉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랜드는 유지하되 자동차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몇 년 후 글로벌 자동차 업체의 주요 수익원은 풍부한 고객 정보에 바탕을 둔 고장 수리,금융 서비스,부품 거래 사업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들이 공장 폐쇄와 인원 감축에 고심하는 사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새로운 수익원을 찾아가고 있다.

jinseok.park@kr.pwc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