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구''가 우리네 일상으로 들어왔다.

대나무숲을 등진 영남지방 전통가옥이 들어서고 고추를 널어놓은 장독대와 우물가도 아기자기하게 마련됐다.

노래와 춤으로 형상화됐던 이미지도 풍부한 대사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난 5일부터 정동극장 무대에 올려진 ''오구 2000''은 이렇듯 사실극적인 요소를 덧칠해 ''죽음의 일상성''과 ''연극의 일상성''을 복원하고 있다.

연출가 이윤택은 "김수영의 시처럼 병풍 뒤에 있는 죽음의 실체를 가감없이 전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미지가 강화되는 연극계의 흐름을 역행하는 스타일일 수도 있다.

이윤택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연극이 사랑받으려면 가장 보수적인 양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연희단거리패의 판단"이라고 못박는다.

자신을 ''철지난 인본주의자''라 단언하는 그의 ''철지난'' 미학에서 아집이 아닌 고집이 느껴진다.

무대를 사실적으로 꾸미면서 얻어낸 곁가지 소득도 하나 있다.

극이 시작되기 전에 진행하는 막전극(幕前劇)의 효과를 제대로 살릴 수 있게 된 것.

극장에 들어설라치면 신문보는 아들과 빨래하는 며느리가 주고 받는 구수한 대화가 이미 흘러나온다.

추상화된 무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객을 헷갈리게 하던 것이 ''일상''속의 연극,연극의 ''일상''을 보여주는 훌륭한 장치가 된 것이다.

이윤택의 ''오구''는 올해로 10년째 공연되는 장기흥행작.

객석과 하나 되는 마당극의 신명나는 흥취,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빚어내는 해학적인 대사들,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풍물과 창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승과의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회한에 복받치는 울음을 쏟는 어머니 강부자의 연기도 매번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내 어미''가 맞이할 삶의 끝을 미리 보는 듯해서다.

지난해보다 템포를 느리게 가져가는 것도 2000버전의 특징.

빠른 흐름으로 웃고 울리다가도 느슨하게 풀어놓고 이것 저것 인생을 돌이켜보는 자리를 마련하는 무대를 만들고 있다.

30일까지 정동극장.

장규호 기자 sein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