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11.3 퇴출"에 이은 대우자동차 부도등의 여파가 가뜩이나 침체된 국내경기에 맞물려 1만여 중소기업이 연쇄부도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금융권이 대기업 퇴출에 이어 중소기업 "솎아내기"에 들어갈 계획이어서 불안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건자재를 비롯 자동차부품 가구 금형 공구 등 대부분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9일로 예정된 금융당국의 은행경영평가결과에 따른 금융구조조정의 영향도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란게 업계의 우려다.

<>車부품=내수 부진,삼성상용차 퇴출에다 대우자동차 부도위기 등 대형 악재가 겹치면서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특히 대우차 부도위기로 대우차 부품업체가 모여 있는 부평공단 남동공단 반월공단과 삼성상용차 부품업체가 있는 대구 달성공단은 최악의 상황이다.

납품대금으로 받은 진성어음의 할인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다 ''정현준 게이트''이후 사채시장까지 얼어붙어 하루 하루 자금막기에도 힘겨워하고 있다.

대우차 1차협력사 모임인 대우자동차 협신회(協信會)소속 회원사들은 받을 돈은 3∼6개월짜리 어음에 묶인 반면 지급해야 할 어음은 이달들어 속속 몰려들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특히 노사 대립으로 대우차의 처리문제가 상당기간 진통을 겪을 경우 협력업체의 도미노식 도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협신회의 한 관계자는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대우차 의존도가 30% 이상인 1백50여개 업체는 앞으로 1주일을 버티기 힘들다"며 "이 경우 수천개의 2∼3차 협력사들도 연쇄 도산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건자재=건자재 업체들은 건설사의 무더기 퇴출이라는 직격탄을 맞아 연쇄도산을 우려하고 있다.

레미콘연합회 유재필 회장은 "건설경기가 워낙 나빠 업계 평균 가동률이 30%에 머물고 있다"며 "이 와중에 주요 건설사들 마저 퇴출돼 수백억원의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퇴출기업의 진성어음에 대해선 정부와 은행이 해결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레미콘의 경우 내년부터 단체수의계약 품목에서 제외된다는 소문도 있어 기업들이 더 불안해 하고 있다"며 "레미콘업체들의 줄도산을 막기위해서라도 연간 1조원 규모의 레미콘 단체수의계약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스콘 타일 목재 철근 등 다른 건축자재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임원준 회장은 "건설회사 퇴출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중소 건자재 업체들을 위해 특단의 자금지원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가구=가구업계도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이미 10대 대형업체중 7∼8개사가 법정관리나 부도 화의상태인데다 최근의 자금경색과 맞물려 수백개의 중소가구업체가 자동 퇴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대영 가구연합회장은 "1천4백여개 조합원사중 80%가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해 있다"며 "경기까지 침체돼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가구업계는 건설경기에 직접 영향을 받는데다 향후 전망도 극히 불투명해 존립기반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특히 아파트용 가구 등을 납품하는 업체의 피해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공구.금형=공구업체들도 건설사들의 잇단 퇴출로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장에서 석재를 갈고 자르는 데 쓰는 각종 건설용 공구를 생산하는 1백여개 이상의 중소기업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

공구조합 최용식 이사장은 "총 1백70여개 회원사의 주류를 이루는 다이아몬드 공구 생산업체들은 내수 판매의 25% 이상을 건설사에 의존하고 있어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 이사장은 "공구업체들은 지난 9월 이후 내수 판매가 크게 줄고 있어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내수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형업체들은 경기 침체에 따른 설비투자 감소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주문이 줄고 있는데다 대기업 퇴출등의 여파가 지속될 경우 올연말부터는 위기에 몰릴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대책=기업 퇴출과 대기업 연쇄부도 위기에 따른 정부의 중소기업 대책은 너무 미약하다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서정대 중소기업연구원장은 "퇴출대상기업의 협력업체에 대한 특례보증을 빼곤 피부에 와닿는 게 없다"며 "그나마 특례보증도 재원확보 문제를 감안할 때 제대로 시행될 지 미지수"라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실물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는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기협중앙회 홍순영 조사담당 상무는 "지금은 비상상황"이라며 "외환위기 직후 마련했던 긴급경영안정자금 같은 특별제도를 만들어 중소기업을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용경색 상황에서는 우량한 기업마저 부도 도미노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며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유망기업이 무너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특히 부도의 연쇄고리를 끊는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중소기업 공제기금을 확충하는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낙훈.김태철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