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은 뒤주에서 나온다고 했다.

또 뒤주가 비면 형제자매가 다투고 강아지들도 싸운다고 했다.

요즘 인터넷 공간을 누비다 보면 이런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절감할 수 있다.

증권 사이트가 대표적이다.

증권 투자로 돈을 잃은 "개미"들이 엉뚱한 일로 다투고 있다.

증권 사이트 팍스넷(www.paxnet.co.kr)의 "자유게시판"은 언제부턴지 싸움판으로 변했다.

증시 침체에 대한 논란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욕설로 번지면서 김 대통령을 지지하는 네티즌과 반대하는 네티즌간의 말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감정 논란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익명의 한 네티즌은 "대통령은 잘못하고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아엠에프 벗어났다고 말씀하신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은 경제위기라고 하니 한심하다"고 써놓았다.

또 "불공정감시원"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은 "미국넘들이 주식을 팔아대면 경제위기라 말하고 미국넘들이 주식을 매수해주면 외환위기 극복했다고 말할 뿐"이라며 김 대통령을 비아냥댔다.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글도 널려 있다.

아이디를 "nopanaga"라고 쓴 네티즌은 "지역주의는 박정희에 의한 경상도 권력독점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고 "재빼"란 아이디의 네티즌은 "아무것도 없는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려고 애쓰신 분"이라며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무조건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옹호했다.

박 전대통령 흉상을 철거자들을 수배한다는 글도 있고 우상 철거에도 강도상해죄가 적용되느냐고 비꼬는 글도 있다.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대한민국에 라도와 상도만 있냐"며 아예 팍스넷을 떠나겠다고 써놓은 네티즌도 있다.

"양이상승"이란 네티즌은 "서울 토박이의 한말씀"이란 글에서 "전라도 경상도만 없으면 나라 조용해지겠다"면서 "정말 지겹다","제발 너희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울분을 토해 놓았다.

네티즌들의 소모적인 감정싸움은 증시침체에서 비롯됐음은 물론이다.

금년 중반까지만 해도 주가시세판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팍스넷 게시판은 웃음을 자아내는 글로 가득찼다.

그러나 지금은 딴판이다.

시세판이 시퍼렇게 멍들면서 네티즌들의 웃음은 한숨으로 바뀌었다.

"뉴파노라마"란 아이디의 투자자는 "주먹구구식으로 주식투자를 하다가 70%의 손실을 입었다","본전 생각에 요즘 잠을 이룰 수 없다"고 써놓았다.

현대건설 주식을 사라는 글을 썼던 "OK목장의 결투"는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사과문을 쓰고 절필을 선언했다.

네티즌들의 격앙된 글을 읽으면서 증시가 선진화되려면 아직도 먼길을 가야 할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주식투자로 돈을 따면 자신이 잘났기 때문이고 돈을 잃으면 정부 탓이라고 말하는 투자자들이 판치는 한 증시가 건전한 자금조달창구로 자리잡기 어렵다는 얘기다.

"忍터NET"란 네티즌은 "주식투자 절대로 하지 마라"는 글에서 "개미들은 깡통 찼다고 정부를 원망하지만 사실 공부도 하지 않고 주식투기를 한 개인들의 잘못이다"고 꼬집었다.

네티즌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려면 "뒤주"를 채워주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 대통령은 "지역감정을 해소하려 해도 여론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지만 "뒤주"가 차면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글 대신 웃음을 자아내는 글이 게시판을 채우게 될 것이다.

ked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