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을 표현하는 단어 중에 "오타쿠"라는 말이 있다.

무엇엔가 푹 빠져 버리는,일단 시작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뿌리를 뽑을 때까지 열심히 연구하여 결국엔 나의 분야를 만들어 버리는 그런 일본인의 근성을 표현하는 단어중 하나다.

일본 각 서점 안의 도서배치도를 그려놓은 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만들고,차를 마실 때 필요한 숟가락에 대한 것만으로도 너끈히 책 한 권을 만드는 그들.

지하철에서 내려 무리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서점 안에 들어가게 되는 독서 열기도 그렇고,그렇게 들어간 서점에 산처럼 많은 실용서들이 있다는 점 또한 일본을 느끼게 한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호의 작품에 보내는 일본인 컬렉터들의 열정 또한 그렇다.

하나의 주제가 던져졌을 때 그들은 열정적으로 거기에 매달리고,그 중의 일부분은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오기도 한다.

발렌타인데이에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신 풍속도가 그랬고,11월 셋째 목요일이면 보졸레 누보를 터뜨려야 한다는 것 역시 일본에서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인들이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유러피안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사실도 한 몫 한다.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라는 이름을 가진 와인이 와인으로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보졸레 지방에서 나는 햇 포도로 담근 와인을 그해 11월 셋째주 목요일에 따서 마시며 축제를 한다고 해서 유명해진 이름이다.

그때 마시는 와인이 바로 "보졸레 누보".

보통의 와인은 포도를 수확해 오크 통에서 숙성시켜 병에 담고 코르크 마개로 막아 2~3년의 보존 기간을 거친 후 마시는 데 비해 병입한 지 6주만에 마시게 되니 그야말로 아직은 설익은 와인이다.

보졸레 지방은 프랑스 동남부 지역으로 언덕배기에 자리해 기후는 아주 온화하지만 가끔 한파가 닥치기도 하는 곳이다.

포도 품종은 가메 누아르 아 쥐 블랑(Gamay noir jus blanc) 한 품종이 재배된다.

이는 모든 적포도주의 시조가 되는 포도 품종.

꽃자루 제거 작업이나 껍질을 벗기는 압착 작업 없이 포도 알 전체를 써서 짧은 기간 동안에 양조되기 때문에 붉은 과일 향의 신선하고 즐거운 기분을 주는 와인이 된다.

보졸레 누보가 맛에 있어서 별로 기대할 바가 없다는 평판은 너무 짧은 침용(浸溶)기간을 갖기 때문.

같은 품종으로 같은 지역에서 수확해 담근 와인 중에는 맛이 좋은 와인도 꽤 있다.

AOC 보졸레, AOC 보졸레 빌라주, 10개의 보졸레 크뤼가 있다.

우선 AOC 보졸레는 남부 보졸레에서 나는 와인으로 신선하고 과일 맛이 진해 수확한 후 1~2년이 지났을 때 좋은 맛을 낸다.

보졸레 빌라주는 토양에 화강암 성분이 많은 북부 보졸레 구역에서 생산된 와인으로 39개 마을에서 만든 것을 혼합해 만든 것이다.

그보다 품질이 좋은 것은 지정된 10개 마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졸레 크뤼라고 해 4~5년은 지나야 제대로 깊은 맛을 내는 와인이다.

보졸레 누보를 혹자는 마케팅의 산물이라고 한다.

사실 포도주 시장에서 마이너였던 보졸레 지역이 업계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는 마케팅적인 발상이 큰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덜 숙성된 게 확연한 보졸레 누보를 놓고 맛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올해 보졸레 누보는 예년에 비해 품질이 좋다고 하니 기대를 할 만하지만 햇 포도로 담근 지 6주 지난 와인을 갖고 전세계적으로 함께 따서 마신다는 즐거움 그 자체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신혜연 월간 데코 휘가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