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가보고 싶은 길,열어 보고 싶은 문이 있을 것이다.

나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은 길이 있었다.

바라만 보던 어떤 길 하나를 내가 내 부모되어 직진도 우회전도 좌회전도 할수 없는, 멀고 먼 골목길을 한점 한점 걷고 또 걸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당도하고 싶은 문 앞에 서 있게 되었다.

이 문을 열 수 있는 힘은 오직 내가 거쳐온 삶의 내용과 진지함,아직도 살아 펄떡이는 열정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첫 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 막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씁쓸해 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이런 나날들을 내 생(生)의 한 켠에 소중히 보관하려 애쓴다.

책 갈피에 넣어 말리는 예쁜 꽃처럼,한잎 한잎 조심스레 따며 혼자서 웃어본다.

지난 화요일이었다.

여름과 가을 내내 논밭에서 보냈을 것 같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부대가 정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차! 창작의 공간이 저 분들의 왁자지껄함 속으로 모두 흘러가버리겠구나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국정 감사에서 부각된 사건을 비롯 차라리 안 보고 싶은 얼굴과 목소리들을 TV에서 신문에서 목소리로 문자로 사진으로 마주칠 때의 느낌과는 아주 달랐다.

열차에 가득한 그들은 하나같이 두눈을 절반쯤 감은 채로,입술은 반쯤 열린 채로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웃고 있었다.

두 눈은 반쯤,입술도 반쯤 감거나 열린 채로.그들은 영락없이 서로 ''얼굴만 보아도 즐겁다''는 신경림 시인의 시 ''피장''의 주인공이었다.

그들의 흥겨운 표정들,주고받는 꾸밈없는 이야기들이 무슨 예쁜 선물인양 내 몸을 덥혀왔다.

그리고는 안보고 싶은데도 나타나서는,상실을 진리로 믿으며 살고 싶은 보통 사람들을 역하게 만들던 뉴스와 신문속의 얼굴과 목소리들을 쭈욱 밀어내 주었다.

서로 얼굴만 보아도 즐거울 수 있는 사람들,백양사 단풍구경 가는 일로 어젯밤을 설쳤을지도 모를 촌부들의 표정들을 단풍인양 물들이고 싶어졌다.

문득 온 몸이 독(毒)이면서도 제 몸의 독을 스스로 정화시키는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온 몸이 바람이면서도 제 둥지를 지키는 사람이 떠올라 두 눈을 찡긋해 보였다.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