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11시 동대문시장.

밤이 깊어지면서 썰렁한 기운이 더해간다.

상인들 사이에서 "장사가 안돼 미치겠다"는 불평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독서와 잡담으로 ''시간 죽이기''에 빠져 있는 상인들이 어림잡아 절반을 넘는다.

''패션의 실리콘밸리''라는 동대문 시장의 모습을 어디서에서도 찾을수 없다.

동대문 시장이 지난해와 너무도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기획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상인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인터뷰는 엄두도 못냈었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상인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동대문시장이 ''패션의 실리콘밸리''로 통하게 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동대문 시장이 1년만에 왜 이처럼 초라하게 변해 버렸는가.

경기부진도 그 이유로 꼽을수 있다.

경기하락에 따른 옷 소비감소가 동대문 시장에 타격을 준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경기탓 때문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A상가는 요즘 뒤숭숭하다.

불과 두달 사이에 3백명 이상의 상인이 쫓겨났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상가운영회사는 입점때 상인들로부터 뒷돈인 ''피(fee)''를 챙길수 있다.

상인들은 새로 입점할 때 최대 3천만원 상당을 상가운영회사에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다.

비공식적으로 내는 ''특별비''도 부담해야 한다.

퇴출을 많이 시키면 시킬수록 상가측의 뒷돈수입도 따라서 늘어나게 된다.

인근 B상가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상가운영회사가 입점상인들에게 새로 설립된 점포를 강제로 분양받도록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분양''이 문제화되고 만것이다.

상가측은 분양을 거부한 상인들을 퇴출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동대문시장이 패션의 실리콘밸리로까지 비유될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벤처정신을 가진 젊은 상인들이 나서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이러한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무분별한 퇴출과 특별비납부에 지친 젊은 상인들은 동대문을 잇따라 떠나고 있다.

동대문 시장의 신화가 한낱 물거품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최철규 유통부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