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선 연내에 기업 구조조정을 끝내겠다고 장담하지만,채권단과 원활한 협조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선 힘든 얘기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내 기업구조조정 지원센터의 이병욱 소장은 11.3 부실기업 퇴출조치 이후에도 기업 금융경색이 여전하고 구조조정과 관련된 각종 인프라가 개선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 정부의 출범 초기에 추진한 철도차량 등 7개 업종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과 98년6월의 1차 기업 퇴출 조치 당시 지적됐던 제도적 문제점들이 대부분 시정되지 않은채 아직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지난 98년6월 1차 부실기업 퇴출 때 삼성전자가 1백% 출자회사인 이천전기를 퇴출시키면서 이 회사의 금융부채 등 2천억원을 대신 갚았다가 참여연대로부터 "삼성전자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며 소송을 제기당한 것을 대표적인 케이스로 들었다.

삼성은 당시 출자회사의 빚을 모기업이 대신 갚지 않으면 자사의 대출이 연체로 낙인찍혀 사실상 부도처리되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신 변제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대주주인 이건희 삼성 회장까지 함께 소송 후유증에 휘말리는 수모를 겪었다는 푸념이다.

삼성측은 "모기업과 퇴출기업,금융권 등 3자가 합리적으로 손실을 분담하지 않아 빚어진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도 금융권의 부채 탕감과 실업대책,세제 지원 같은 비상구를 열어 놓지 않은 채 구조조정을 강행 처리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재현될 것이라고 재계는 우려한다.

현대 삼성 대우 등 항공제작 3사가 만든 항공통합법인의 경우 영국 BAE시스템스로부터 들여오기로 한 2천억원의 외자가 ''깜깜 무소식''인 것도 부채 탕감 효과를 지닌 금융권 출자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SK케미칼과 삼양사의 화학섬유 통합법인인 ''휴비스(HUVIS)''가 통합 발표후 4개월만인 지난 1일에야 뒤늦게 출범한 것은 공무원의 고질적인 ''보신주의''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재계는 지적했다.

두 회사는 지난 7월 통합 방침을 발표한 뒤 실무 작업에 박차를 가했으나 기업결합 심사를 맡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특혜 시비를 우려,''서류 접수후 3개월 내에 처리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업무를 늑장 처리했다고 재계 관계자는 꼬집었다.

인천제철은 올초 강원산업을 합병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5년간 ''쌍둥이'' 경리팀을 운영해야 할 형편이다.

현행법상 구분 경리를 해야 구조조정 관련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직원 월급도 두 회사가 따로 줘야 할 판이다.

이런 식으로는 인력조정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게 인천제철측의 하소연이다.

현대중공업은 채권단의 요청으로 위탁경영을 맡고 있는 삼호중공업(옛 한라중공업)이 계열사로 편입될까봐 자금지원과 출자,지급보증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경영정상화에 애를 먹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채권 금융단의 요청으로 부실 기업을 위탁 경영하는 경우에는 부득불 출자 등을 하더라도 일정기간(5년) 계열사 편입을 유예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계는 법정관리 제도와 관련,법정관리 신청 즉시 재산보전 처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화할 것도 요청하고 있다.

엄기웅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차질없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구조조정 인프라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