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에서 웅녀와 함께 동굴로 들어간 호랑이는 수컷이었을까,암컷이었을까.

수컷(남성)이었다면 웅녀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대형 창작발레 ''신시(神市)21''(장선희 발레단)의 모티브다.

기발하기는 하지만 이인화씨의 장편소설 ''초원의 향기''(1998년) 프롤로그에도 등장하는 상상력이다.

어떻게 된 노릇일까.

"소설에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 다른 장르로 외도해본 것"이라고 이인화씨는 설명한다.

''초원의 향기''의 프롤로그를 뼈대로 ''신시21''의 대본을 집필한 것이다.

''초원의 향기''는 당나라로 흘러든 고구려 유민들이 고구려 문명을 재건하려는 꿈을 그린 작품.

우리 건국신화에 나오는 신시를 그 문명의 원형이자 이상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신시 21''도 자연과 인간,그리고 신성(神聖)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던 신시를 복원하고자 한다.

혼돈과 퇴폐로 얼룩진 현대문명에 그 생명수를 붓겠다는 점에서만 다르다.

이 작품은 한 남자(虎子)에게 버림받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가는 웅녀와 그를 흠모하는 환웅의 사랑이야기로 단군신화를 각색한다.

여기에서 태어나는 단군은 새로운 우주질서의 성립으로 묘사된다.

신시라는 고대적 유토피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탐욕과 허영의 인류사는 신시의 이상을 퇴색시키고 또다시 카오스의 세계로 빠져든다.

2막의 무대인 2000년 서울이 바로 그곳.

호자는 인신매매범으로 일그러진 현대문명을 대변하고 웅녀와 그의 어머니는 불법체류하는 몽골여인으로 나온다.

온갖 고통과 멸시를 이겨내는 웅녀는 "온 세상은 상승(上昇)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환웅을 만나며 기쁨에 젖는다.

다시금 세상은 신이 인간이 되고 짐승이 인간이 돼 하늘과 땅이 결합했던 신시의 우주적 환희가 부활한다.

이 작품은 90년대 후반부터 ''나비의 꿈''''황진이''''파우스트 2000'' 등 대형 창작발레를 선보여온 장선희씨가 올해 새로 내놓은 신작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젊은 음악인 원일씨도 참여하고 있다.

그의 본격적인 무용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다.

오는 25,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3408-3280

장규호 기자 sein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