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길 < 청주대 객원교수 / 언론정보학 >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는 박빙의 투표 결과로 말미암아 지금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사태를 보이고 있다.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나,앨 고어 부통령 중 과연 누가 내년 1월20일 제43대 미합중국 대통령에 취임하게 될는지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재검표에 들어간 플로리다주 선거결과로 대통령의 당락이 결정될 판이다.

2백년 이상 유지해온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제도의 잘못일까.

첨단 투표,첨단 개표로 앞서가는 미국도 선거관리에서 허점이 드러난 걸까.

세계 역사상 인류가 고안한 가장 민주적인 제도라고 자랑하는 미국 정치가 정말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인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급한 실망을 가져다 준 이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은 지금 사상초유의 호황 속에서 번영을 구가하는 분위기에 젖어 온 국민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11월 초에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결과 미국인의 94%가 ''아주 또는 대체로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1992년 조사 때는 90%였다.

퓨 언론연구소의 한 조사에서는 미국인의 51%가 ''현재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는데 1992년엔 같은 조사의 만족도가 22%밖에 안됐다.

경제면에서 사상 최고의 재정 흑자,21년만의 최저 빈곤 지수,30년만의 최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1992년 3,252였던 다우존스공업지수가 1만선을 넘은 지 오래다.

미국인의 과반수가 주식이나 뮤추얼펀드에 가입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점점 더 건강해지고 있다.

미국인의 평균 수명 기대치는 2000년에 태어난 아기들의 경우 77.1세로 늘어났다.

1992년 출생아들의 경우 75.8세였다.

심장질환 암 뇌일혈 등 미국인의 3대 사망 원인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청소년 흡연과 마약이 증가하고 영양과다로 인한 비만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

인종의 비율도 달라지고 있다.

1992년과 비교해 히스패닉 인구가 25% 늘어난 3천2백만명인데 반해 흑인은 10%,백인은 3%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2000년 7월 현재 2억6천7백만 미국 인구의 인종 비율은 백인 72%,흑인 12%,히스패닉 12%,아시아 패시픽 4%로 추산된다.

이렇게 달라진 환경과 분위기야말로 지금과 같은 예측하기 힘든 사태를 빚게 된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양당 후보 사이에 가장 치열하게 부각됐던 쟁점은 계속되는 호경기를 맞은 미국의 엄청난 재정흑자에 대한 상반된 정책이었다.

''재정흑자는 정부가 쓸 돈이 아니다. 국민에게 되돌려주어야 할 돈이다(Surplus is not government money,but people''s money)''

부시 공화당 후보가 외친 주장이었다.

그러니까 정부가 과감한 세금감면으로 재정흑자를 국민에게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반면 고어 민주당 후보는 그 재정흑자를 사회보장 예산으로 쓰자는 정책이었다.

그래서 중산층이 많이 사는 대도시가 있는 동부지역과 캘리포니아 및 미시간주에서 고어 부통령 표가 많이 나오고,농업과 기업이 발달한 남부와 중서부주들이 부시 주지사를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예비선거가 실시되기 훨씬 전부터 공화 민주 양당의 대통령 후보는 부시 주지사와 고어 부통령으로 가시화돼 왔다.

부시 주지사는 지난 여름 공화당 전당대회까지 각종 여론 조사에서 고어 부통령을 앞서 나갔다.

그 후 민주당 전당대회이후 여론 조사들은 오차범위내의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부시가 약간 우세한 편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민주당 선호와 계속되는 호경기에 힘입어 어떤 여론 조사는 고어 우세도 보이면서 박빙의 승부를 예고했던 것이다.

21세기 미국인들은 행복한 삶을 즐기다 못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정치 자체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의 정책은 중도적일 수밖에 없다.

클린턴 행정부의 성공은 공화당정책을 대폭 수용하면서부터 출발했었다.

미국 민주주의는 ''단 한표의 차이라도 다수 의사에 승복하는 원칙''을 존중한다.

벌써부터 미국 여론은 아무리 박빙의 승부일지라도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