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짧게 깎으라고 하면 더벅머리가 되도록 내버려두고 싶고,길어도 된다고 허용하면 빡빡 깎고 싶은 것이 청소년들의 심사인가.

"10대 독립"을 외치며 학생들이 만드는 "아이두넷" 사이트(www.idoo.net)에선 "두발제한반대서명운동"이 반년째 펼쳐지고 있다.

최근 교육부가 두발 자유화 방침을 밝혔는데도 서명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아이두넷 사이트에는 서명자가 약 15만명에 달했다고 씌여 있다.

요즘에도 일평균 2백여명의 학생이 서명하고 있다.

중복서명을 어떻게 막는지 확인하진 못했지만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

학생들은 "우리의 인권은 우리가 지킨다"며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있다.

기성세대 눈으로 보면 굳이 "인권"까지 들먹일 일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진지하다.

서명학생들이 게시판에 써놓은 글을 읽어보면 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왜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두발 제한은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다(강주훈),우리는 인형이 아니다(정유진),염색은 안되더라도 두발만은.(박성윤),우리는 털 깎는 양이 아니다(배소원),개성을 죽이는 게 교육인가(손의진),우리의 머리 우리 맘대로 하고싶다(고영실)...

두발제한반대서명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은 머리카락의 길이를 귀밑 3cm로 제한하는 것은 개성과 다양성을 말살하는 처사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학교측이 학생들을 손쉽게 통제하기 위해 획일적인 스포츠형 머리로 개성을 무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얘기다.

학생들은 기성세대의 눈에 반항처럼 보일 법한 사이버시위를 벌이게 된 내역도 설명해 놓았다.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건의하면 묵살당하기 마련이고 상부에서 받아들인다 해도 "각급 학교 자율"이라는 말로 학교측에 책임을 떠넘기면 학교는 상부 눈치를 보느라 자유화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결집된 목소리를 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서명운동의 효율을 올리기 위해 청소년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들을 서명 사이트(www.idoo.net/nocut/frame.htm)와 연결해놓았다.

사이버유스(cyberyouth.org),채널텐(www.ch10.com) 등이 대표적이다.

"해적"(www.haejuk.co.kr)과 같이 자발적으로 운동에 참여한 사이트도 있다.

중고등학생 주도로 펼쳐진 두발제한반대서명운동은 학생들에게 다수의 힘과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거나 힘으로 저항하는 대신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다수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한 기성세대는 사실상 의사를 밝히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학부모중에는 탈선을 우려해 두발 자유화를 반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발제한반대서명운동을 "민주적"이라고 말하기엔 미흡하다.

진정한 전자민주주의라면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ked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