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밝힌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은 그동안의 급진적 개혁론을 상당부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현실에 근접한 안으로 평가하고 싶다.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유보되고 회계장부 열람요건을 현행대로 유지키로 한 점 등이 그런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모·자회사간 주식교환이나 이전을 허용한 것도 경영환경 변화에 발맞춘 전향적인 개선안이라고 본다.

그러나 3자배정 신주발행 용도를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에 한정시키거나 영업의 일부 양수에까지 주총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한 점 등은 지배구조 개선의 기본 방향과도 맞지 않고 신속한 경영상의 판단이 갈수록 중요성을 더해가는 현실에 비추어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신주발행 용도를 엄격하게 제한한 것은 일부 기업주들이 신주나 BW(신주인수권부 사채)를 편법 증여나 상속의 방편으로 사용해왔기 때문이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주발행 자금의 용도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부터가 적잖이 의문이다.

편법증여 등은 세법을 통해 엄격히 다룰 일일 뿐 기업 재무전략의 다양성을 원천 봉쇄하는 방법으로 이를 막겠다는 것을 꼭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이라는 것도 불투명한 용어이기는 마찬가지여서 실제 적용 과정에서 상당한 혼선을 일으킬 것이 예상된다.

주총을 통해 정관이 확정되는 것인 바에는 주총에서 이미 허용된 신주발행을, 용도 제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규제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영업 일부 양수에 대해서까지 주총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한 부분은 더욱 문제라고 본다.

재벌그룹의 불법적인 내부거래를 단속하겠다는 뜻이라고 보지만 역시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영업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고파는 것은 때로는 매우 신속하고 극비리에 처리되어야 할 일임이 분명한 터에 어느 세월에 주총소집 공고를 내고 특별결의까지 얻고서야 이를 집행한다는 말인가.

정부의 상법 개정안을 보면서 더욱 딱하게 여기는 것은 이토록 자주 제도를 뜯어고쳐도 좋은가 하는 점이다.

98년과 99년에 이어 또다시 제도를 고쳐야 한다면 제도와 법률의 안정성은 형해화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겠고 하나의 제도가 정착될 틈도 없이 다시 새로운 제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경영구조의 안정성을 논하는 것도 무리라면 무리다.

당국은 이같은 사실을 인식하는 바탕위에서 개정 법률안을 다듬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