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을 화폐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BC 2000년께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화는 BC700년께 그리스의 식민지 류디아에서 처음 주조된 것으로 전해진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때 주조된 소리두스 금화는 1천년 동안이나 유통됐다.

13세기에 주조된 피렌체의 후로린 금화,베네치아 금화,1489년 영국 헨리7세때 만들어진 1파운드짜리 소브린 등은 유럽 근대적 통화의 모체가 됐다.

이보다 뒤늦기는 했어도 우리나라도 한 때 금화를 주조한 때가 있었다.

조선왕조는 숙종4년(1678)이래 동전인 ''상평통보''를 고종때까지 2백여년 동안 써왔다.

이처럼 상평통보를 유일한 법화로한 화폐제도는 대원군의 당백전 남발과 중국동전 수입유통때문에 극도로 문란해졌다.

그 무렵 필연적으로 은본위,금본위제가 논의됐다.

독일인 묄렌도르프의 건의에 따라 1883년 상설조폐기구인 전환국을 설치했다.

조폐기기를 도입하고 기술자도 초빙했다.

1901년 러시아인 새 재정고문 알렉세예프는 금본위제도 채택을 규정한 ''화폐조례''에 따라 본격적 주조를 시작했다.

그해 3월 은화와 백동화 등과 함께 러시아식 쌍독수리와 태극문양,팔괘가 그려진 10환짜리 금화가 소량의 견본으로 나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화폐주조는 조선조정을 다시 친일파가 주도하자 다음해 중지되고 말았다.

일본은 1904년 전환국을 철폐하고 조선화폐는 오사카조폐국에서 주조했다.

1909년까지 오사카조폐국에서 금화 20환 10환 5환짜리 1백45만환을 주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금화에는 러시아식 독수리문양이 사라지고 이왕가의 배꽃문양이 들어 있다.

실제로 얼마나 유통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는 30일 서울서 열리는 국제화폐경매에 구한말 오사카에서 주조한 금화 3종 등 4백50여점의 희귀화폐가 출품된다고 한다.

특히 3종의 금화세트는 지난5월 미국 헤리티지화폐경매에서 17만달러(약1억9천만원)에 낙찰됐던 희귀품이다.

화폐에 대한 지배권을 잃으면 국권을 상실한다는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역사적 유물이지만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