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진해에 있는 제2선수촌으로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당시 바르셀로나올림픽 지역예선을 준비하고 있던 축구협회는 세계적 지도자인 독일의 크라머를 대표팀 총감독으로 두고 있었다.

그의 진면목과 우리 한국인 코칭스태프와의 융화 여부를 살펴보는 게 나의 목적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현지에서 본 코칭 스태프인 김삼락 감독,김호곤 코치와 크라머의 불화는 좀 과장되게 말해서 ''씨앗싸움''을 방불케 했다.

하루를 같이 지내는 동안,우선 크라머와 김 감독이 한자리에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누구나 즐겁게 마련인 식사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크라머는 자신이 데리고 온 외국인 트레이너 두 사람과 함께,김 감독은 김 코치와 함께 멀리 떨어져 식사를 하고 있었다.

코칭 스태프가 이러니 선수들 마음이 편할리가 없다.

다들 양쪽 눈치를 살피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크라머와의 사이에 문제는 없느냐고.잠시 머뭇거리던 김 감독은 한숨을 앞세우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한배를 탔는데 이러니 저러니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선수들이 합숙훈련을 시작한 후로 다들 체중이 1∼2㎏씩 늘었다.

결전을 앞둔 대표팀의 훈련이 이래도 되는 것이냐"

실제로 대표팀의 훈련 스케줄을 살펴보니 ''30분 산책''같은,우리 지도자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프로그램들이 들어있었다.

말하자면 기본과 원론을 중시하는 크라머와,당장 목전에 닥친 결전을 염려하는 우리 코칭 스태프의 생각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양쪽의 견해를 모두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통역을 통해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크라머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한국인 모두를 불신하는 기색이었다면 지나쳤을까.

결국 우리 대표팀은 올림픽 티켓을 땄지만 그 직후 크라머는 독일로 돌아가버렸다.

정작 그의 힘이 필요했던 바르셀로나올림픽 본선에서 크라머는 스탠드의 관중 한 사람으로 만족해야 했고,우리 팀은 8강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 축구는 다시 외국인 감독 영입에 매달리고 있다.

불과 1년반 앞으로 다가온 2002년 월드컵에서 주최국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프랑스의 에메 자케는 거절을 했고,네덜란드의 히딩크 등도 아직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는 상태라고 듣고 있다.

어쨌든 방향이 정해진 상태에서,새삼 외국인 감독 영입이 잘하는 일인지 어떤지를 따지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몇가지 주문을 하고 싶을 뿐이다.

첫째,2002년 월드컵대회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남은 기간이 1년반이라지만 외국인 감독이 우리 선수들을 살펴보고 팀을 구성하다보면 1년 남짓한 임기만이 남는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세계적인 지도자라고 해도 1년만에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기왕에 세계적인 감독을 영입하기로 했으면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눈을 넓혀 2006년 월드컵을 목표로,2년 혹은 3년의 임기를 보장하고 재신임할 수도 있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앞서 말한 크라머의 경우 1964년 도쿄올림픽을 대비한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이미 62년에 부임한 바 있었다.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신통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다음 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기적을 이뤘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는 명성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한국적인 정서에 동화할 수 있는 인물인가 짚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단 영입했으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나무에 올려놓은 뒤 여기 저기서 흔들어대기나 한다면,월드컵 주최국의 명예에도 흠집이 갈 뿐 아니라 막대한 외화가 아까워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들을 명심한다면 우리도 일본처럼 외국인 감독의 성공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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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소설가
△경희대 국문과 졸업
△대하소설 ''빙벽''''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