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휴양도시 라볼.

풍광이 뛰어나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이곳에 지난 10월23일 세계 MPEG(영상압축해제기술) 전문가 4백여명이 몰려들었다.

제54차 MPEG 표준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4박5일동안 자신들이 제안한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시키기 위해 한치의 양보없는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한국의 참가자는 40명.

마지막날인 27일 드디어 표준초안이 발표됐다.

"미국 30건,한국 22건,일본 20건..."

회의장에 모인 한국 전문가들은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전체 표준초안 가운데 20%이상이 국내에서 제안한 기술로 채택된 것이다.

"그때만큼 기쁜 적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최대 경쟁관계였던 일본 유럽을 앞섰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김현준 박사(LG종합기술원 책임연구원)는 지난 3년간 동료 팀원 8명과 밤잠을 설쳐가며 연구한 결과가 비로소 세계의 주목을 받게 돼 눈물이 앞을 가렸다고 한다.

◆''공적인 표준'' MPEG=MPEG은 ''Moving Picture Experts Group''의 약자로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오디오·비디오 신호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전송하는 차세대 멀티미디어 핵심기술.

특히 인터넷,VOD(주문형비디오),DVD(디지털비디오디스크),디지털방송 등에 필수적이다.

최근 떠오르는 기술표준중 드물게 국제표준화기구(ISO/JTC1)에서 인정하는 ''공적인 표준''이다.

한번 표준으로 결정되면 기술 이용자는 누구나 고액의 로열티를 물고 표준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업계의 출발점 MPEG4=MPEG 표준안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MPEG1 MPEG2 MPEG4 MPEG7 MPEG21 등으로 이어진다.

1,2,4…등의 숫자는 표준화회의에서 임의로 정한 것이다.

가령 1에서 해결못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경우 2에서 표준을 정하는 방식이다.

MPEG2만 하더라도 1백개 이상의 요소기술로 구성되며 각각의 요소기술마다 표준기술을 뽑는다.

따라서 표준안에 자사의 기술을 많이 밀어넣을수록 매출과 이윤을 자동으로 보장받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2류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국내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표준에 참여한 것은 MPEG4부터다.

MPEG1,2에는 참여하지 못한 탓에 DVD 한대를 만들 때마다 원가의 10% 이상 로열티를 물어야 했다.

◆MPEG7로 꽃을 피우다=국내 업체들의 전성기는 각종 멀티미디어 응용분야를 다루는 MPEG7에서다.

프랑스 라볼에서 거둔 성적은 바로 MPEG7 표준과 관련된 것이다.

삼성전자 LG전자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MPEG7에 도전해 LG전자는 13건,ETRI 5건,삼성전자는 4건 등을 표준초안으로 채택시켰다.

이로써 한국이 향후 MPEG7이 적용될 분야로부터 얻게 될 로열티 수입은 전문가들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할만큼 엄청나다.

◆MPEG21에의 도전=MPEG21은 전자상거래를 위한 콘텐츠 제작부터 서비스 방식,소비자 보호방안까지 포괄적으로 표준을 정하는 규격이다.

LG 삼성 ETRI 등은 2001년 12월 표준결정에 대비해 기술개발에 들어간 상태지만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MPEG21은 이전보다 훨씬 종합적인 기술력이 요구되지만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선진국의 기술력이나 인력에 비해 역부족"(안치득 ETRI연구부장)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중앙연구소 채양림 박사는 "국내 기술이 강점인 분야를 중심으로 업체들이 힘을 합쳐 공동 개발하면 전망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