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가 아닌 전세계 어느 곳에도 예금구좌를 갖고 있지 않다.
나에게 여러가지 혐의를 두고 있지만 (페루정부가) 낱낱이 조사해 보면 다 알 것이다"

해외순방중 도쿄에서 국가원수직 사임을 밝혔다가 페루의회로부터 해임당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대통령이 지난 25일 일본 매스컴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20억엔을 일본에 비밀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과 관련해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망명은 않겠다''면서도 페루에 언제 돌아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직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페루정세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게 이유였다.

재임시 자신의 치적으로 테러근절, 경제회복 및 에콰도르와의 평화교섭 등을 꼽았다.

그러나 같은 시각 페루 리마에서 일본기자들이 타전한 기사에는 페루국민들의 분노와 비난이 가득했다.

리마발(發) 기사에서 일본언론은 신변위협 때문에 귀국하지 않는다는 그에 대해 "테러근절을 치적으로 내세우는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후지모리가 도쿄에 온 것은 지난 17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후 귀국길에 도쿄에 들렀다.

그의 일본체류가 장기화되자 일본정부는 페루와의 관계악화를 우려해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페루정부는 "일본이민 후손인 후지모리의 처신이 페루국민의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며 일본정부가 이 문제를 잘못 다루면 양국관계에 치명상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때 후지모리는 페루에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 준 지도자로서 일본의 자부심을 높여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상의 나라''에서 자신이 10년 넘게 통치한 국가의 원수직을 팽개치고 귀국과 해명을 거부하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일본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페루 매스컴은 이같은 후지모리를 ''도망친 사무라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후지모리의 기자회견 전날 페루 대통령관저에선 성난 페루국민들이 "후지모리 정권하에서 국기가 더렵혀졌다"며 물로 국기를 씻어내는 의식을 가졌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