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청자는 신라 후기 9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고려조 12세기전반 세계에서 유례없이 아름다운 비색순청자로 발전했다가 12세기중엽 구름 학 온갖 새들과 물고기,갈대와 버들등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청자상감으로 꽃핀다.

고려청자는 무늬가 없는 소문(素文)청자,표주박 연꽃 사자 기린 오리 참외등 동물이나 식물모양으로 만든 상형(象形)청자,양각 음각 투각 청자,청자유약을 벗겨내 문양이 갈색으로 나타나는 노태(露胎) 청자등으로 나뉜다.

중국청자는 우리보다 다소 앞섰지만 색과 무늬에서 전혀 다르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정양모씨에 따르면 중국청자의 색은 아름다우나 불투명해서 너무 무겁고 진하다.

반면 고려청자의 비색은 은은하면서 맑고 명랑하다.

중국청자는 기형이 예리한데다 모양을 과장해 장중하고 인위적인데 비해 우리청자는 질의 특성대로 기능에 충실하고 억지를 부리지 않아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또 유려한 선과 탄력있고 생동감넘치는 형태엔 귀족적 세련미가 넘친다.

중국청자엔 상감은 물론 음ㆍ양각을 이용한 문양이 없지만 우리 청자는 회화적이며 시적인 운치가 넘치는 상감문양을 지닌다.

혜곡 최순우 선생은 ''청자상감운학문매병''찬사에서 고려청자의 탁월함을 이렇게 적었다.

''신기한 천연색사진으로도 잘 구워진 고려청자의 맑고 조용한 푸른빛의 아름다움을 재현할 수는 없다.

더없이 희한한 물감이라도 고요와 사색에 사무친 고려청자의 아득하고도 깊은 빛깔처럼 물들일 수는 없다.

제아무리 영롱한 색깔로 이뤄진 값비싼 비단도 청자상감 무늬의 지체높은 호사스러움에 당해낼 수 없을 듯만 싶다''

일본 교토(京都)의 한 도자기상이 한국 이천에서 만들어진 도자기에 자기낙관을 새긴 뒤 고려청자 전문가로 행세하다 꼬리가 잡혔다는 소식이다.

고려청자 복원에 성공했다며 세계각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유명미술관에 기증도 했다는 데엔 어이가 없다.

역사에 이어 남의 문화유산 날조까지 일삼는 뻔뻔스러움에 기가 질리거니와 10년이나 농간을 부릴 동안 우리 문화계는 무얼 했나 싶어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