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를 눌러라''

세계 신용카드시장의 거두인 마스터카드는 지난 95년 호주 캔버라에서 ''마스터 캐시''라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미래에 떠오를 전자화폐시장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자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주 내용.

당시 세계 카드업계에서는 "신용카드시장에서 비자에 비해 열세인 위치를 역전하기 위해 내놓은 일종의 선전포고"라는 분석을 내놨다.

마스터의 선제공격에 비자도 ''질수 없다''며 즉각 반격에 나섰다.

비자는 같은해 ''비자 캐시''라는 전자화폐 법인을 별도 설립했다.

그러나 2년후 마스터는 또한번 비자를 겨냥해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세계 최대 전자화폐 회사인 몬덱스를 인수한 것이다.

당시 마스터의 몬덱스 인수는 세계 카드업계에서 ''일대사건''이었다.

마스터와 비자는 이후로도 경쟁관계를 계속 이어갔다.

때로는 ''적과의 동침''도 불사했다.

지난 97년 맨해튼 프로젝트가 그런 사례다.

비자와 마스터는 전자화폐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수익모델을 공동 연구하기 위해 뉴욕의 시티뱅크,맨해튼뱅크와 함께 맨해튼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양사간 협력관계는 1년을 넘지 못했다.

전자화폐가 어떤 것이길래 세계 신용카드시장의 양대산맥인 비자와 마스터는 이토록 한치의 양보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제3의 화폐혁명''=전자화폐란 소형칩이 내장된 IC카드(스마트카드)에 일정한 화폐가치를 디지털 형태로 저장한 뒤 물품이나 서비스의 구매 등에 사용하는 지불수단이다.

디지털 정보로 저장돼있기 때문에 도난의 위험이 없고 1원 단위의 작은 액수도 지불 가능하다.

잔액이 부족할 땐 간편하게 충전하면 끝이다.

더욱이 전자화폐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인터넷 등 온라인시장에서도 결제수단으로 폭넓게 쓰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자화폐가 보편화될 경우 기존의 금융거래 관행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비자와 마스터가 경쟁을 벌이는 것은 전자화폐의 이같은 위력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자화폐는 오는 2005년께 동전·지폐와 신용카드 등 기존 결제수단을 완전히 대체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지불수단으로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비자와 마스터의 전략비교=마스터는 97년 몬덱스 인수를 계기로 몬덱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대적인 시장선점 공략에 나섰다.

"경쟁사보다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시스템을 누가 먼저 시장에 내놓느냐가 관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윤경원 마스타카드코리아 상무)이란 설명이다.

이에 따라 몬덱스는 ''멀토스(MULTOS)''란 전자화폐 운영체제를 내놓고 전세계 시장을 파고들었다.

몬덱스 전자화폐는 보안성과 다양한 응용서비스가 강점이다.

마스터는 전세계 85개국에서 시범서비스중이며 호주 일본 스웨덴에서는 아예 국가 표준으로 채택시켰다.

마스터에 비해 비자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이다.

아직까지 시범서비스가 유럽지역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아시아 북미지역 등에서는 마스터에 비해 소극적이다.

반면 운영체제에서는 공개정책을 펴고 있다.

''오픈 플랫폼''을 각 지역에 맞게 비자캐시란 브랜드로 자율 사용토록 한 것.

이는 "로컬업체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면서 시장기반을 넓혀나가기 위한 전략"(비자캐시코리아 오창석 팀장)에 따른 것이다.

◆전자화폐 단일표준 움직임=카드나 단말기가 다르더라도 세계 어디에서나 호환이 가능한 국제표준모델이 제안된 적이 있다.

가령 비자캐시를 쓰는 사람이 몬덱스 시스템을 도입한 은행에서 거래할 수 있는 형태다.

실제 비자 마스터 유로페이 3사는 범세계적으로 통용 가능한 국제표준화규격으로 EMV를 완성했다.

그러나 각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해 현실 적용에는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종태·김진수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