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혹은 도망치거나"

영국 요크셔 시골마을의 "트위디 양계장".닭들에게 떨어진 지상과제다.

포악한 농장주인 트위디 여사가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돈밖에 모르는 여사는 달걀을 팔아 푼돈을 쥐는 대신 닭들을 죄다 치킨파이로 만들어 팔기로 하고 자동 파이기계를 들여놓은 터다.

암탉 진저를 리더로 한 암탉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농장지기와 무서운 개들의 철통같은 경비에 걸려 번번히 잡히고 만다.

단체로 목숨이 날아갈 위기에 처한 이들앞에 때마침 구세주가 등장한다.

미국 출신의 "나는 수탉"키다.

진저와 친구들은 그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워 도망치겠다는 꿈에 부푼다.

영국 애니메이션 회사인 아드만이 제작하고 미국 드림웍스가 배급을 맡은 클레이 애니메이션 "치킨 런"(Chicken Run.감독 피터 로드,닉 파크)은 닭장너머 새 삶을 꿈꾸는 닭들의 귀여운 탈출작전을 소재로 했다.

닭들의 기발한 탈출 시도와 좌절은 탈주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스티븐 맥퀸 주연의 "대탈주"(63년작.감독 존 스타제스)를 빼닮았다.

재미난 이야기도 일품이지만 뭐니뭐니해도 닭들의 실감나는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놀라거나 목젖을 꿀꺽 넘기며 공포에 떨고,사랑에 빠지거나 행복에 겨워하는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각각 개성이 분명한 캐릭터들은 대단히 사랑스럽다.

동작과 움직임은 놀랄만큼 자연스럽고 원근감도 확실해 사실감을 더한다.

수탉 로키 목소리는 인기배우 멜 깁슨이 맡았고 진저역은 영국 배우 줄리아 사왈라가 연기했다.

"치킨런"은 지난 6월 개봉된후 미국에서만 1억1천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글래디에이터"나 "라이언일병 구하기"같은 드림웍스의 다른 작품들을 제치고 회사측에 최고의 수입을 안겨줬다.

남녀노소 누구나 유쾌하게 즐길만 한 수작이다.

16일 개봉.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