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공법학 교수 >

지난 11월13일부터 17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마리나 델 레이(Marina der Rey)에서 ICANN(국제 인터넷주소관리기구) 연례회의가 개최됐다. 이 회의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됐던 것은 역시 신규 일반도메인(gTLD)의 승인문제,ICANN과 국가별 최상위 도메인이름(ccTLD) 관리주체와의 계약 체결 등을 통한 관계 공식화 문제 등이었다.

이들 현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촉각을 모으며 각국에서 온 관계자나 기업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진열대가 있었다.

닷티브이(.tv) ''sports'' ''game'' ''college''등 어떤 단어라도 그 앞에만 붙여 놓으면 멋진 텔레비전방송 또는 인터넷방송이 되는 이름을 갖고 장사를 하는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기업이었다.

닷티브이란 ''투발루(Tuvalu)''란 잘 들어 보지 못한 작은 나라의 국가코드 도메인이름이다.

그런데 닷티브이 회사가 투발루 정부로부터 그 국가코드 도메인이름의 관리권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검색엔진을 통해 누구라도 원하는 닷티브이 도메인이름의 등록여부나 등록비용 등을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는데,별로 유명하지 않은 개인의 이름은 대개 50달러부터 시작했고,음절수가 적거나 유명한 이름,쓰임새가 높을 것 같은 이름들은 몇백만달러를 호가하는 것도 적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한글도메인이름,즉 한글.tv와 같은 도메인도 등록이 가능하게 돼 있었는데,놀랍게도 성남이니 분당이니 웬만한 한글지명은 거의 대부분 등록돼 있었다.

그 것은 한국인이나 기업,또는 한글도메인이름을 선점해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이미 그만한 등록비를 지급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흡사 현대판 봉이 김선달을 연상시키는 얄미울 정도의 선견지명으로 그들은 닷뉴(.nu:Niue),닷씨씨(.cc:Cocos(Keeling) Islands) 등과 더불어 국가별 도메인이름을 갖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업을 일으켰고 성공사례를 만들어 냈다.

물론 이들이 국가코드 도메인이름을 상업화한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그들은 ICANN이라는 인터넷 가버넌스의 장에 자리를 굳히고 제3세계 소국들의 권익을 옹호하며 ''디지털 디바이드''를 극복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닷티브이는 영역가정을 허물어 새로운 이윤창출의 기회를 연 인터넷시대 대표적인 성공사례의 하나다.

국가코드 도메인이름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나라들과 협정을 맺어 그들의 국가코드 도메인이름을 비즈니스의 소재로 활용하고, 그로부터 얻는 수익을 일부 돌려줌으로써 누이좋고 매부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영전략으로 닷컴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성공을 거둔 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런 새로운 이윤창출의 기회와 시장개척에 대한 우리들의 무감각을 탓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이들의 등장이 국가코드 도메인과 일반도메인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종당에는 최상위 도메인(TLD)을 입력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이름,그것이 영문이든 한글이든 이름만 치면 웹사이트로 연결되는 범용 키워드 서비스체제로 갈 가능성이 크다.

한글닷컴 때문에 충격을 받고 허둥지둥하던 정부와 국내업계,도메인이름 관리기관들의 모습을 상기하면서,자칫 한글도메인을 서둘러 정착시키지 않을 경우 시작도 하기 전 경쟁에서 패퇴하고 말 한글.kr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말과 이름조차도 이제 외국의 회사를 통해서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한글도메인이름의 등록정책,분쟁해결정책을 만들기 위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논의과정을 지켜 보면서 전문기술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와 민주적 토론과정을 통해 합의해야 할 문제가 혼동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기술적 전문성에 대한 신뢰할만한 판단능력을 갖춘 기구와 전문인력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닷티브이의 선견지명은 커녕,벌써 거쳤어야 할 문제를 뒤늦게 부랴부랴 챙기기 시작한 우리 예지의 빈곤을 한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