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방문단중 최고령인 신용대(81)씨는 아들 신문제(50)씨를 만나자마자 얼싸안고 부둥켜 울었다.
그는 "이름만 아버지지 아버지 노릇을 못했다"며 "죄가 많은 사람"이라고 한탄했다.
용대씨는 건강은 괜찮으시냐는 아들의 물음에 "일없다(괜찮다). 헤어진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했고 절대 과식을 삼가면서 건강을 지켜 왔다"며 "이렇게 행복한 날이 올줄 알았다"고 힘줘 말했다.
6.25 당시 경기 안양공고에서 음악교사로 일하다 월북한 신용대씨는 "어머니 얼마나 기다렸어요. 제가 죄인입니다. 아들이 태어난지 두달만에 헤어져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니..."라며 탄식을 연발했다.
<>.북의 리석균(72)씨는 동생인 석정(63) 석훈(61) 석오(51)씨로 부터 어머니의 "눈물로 먹을 갈고 백발로 붓만들어..."란 유시(遺詩)를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94년 작고한 석균씨의 어머니 유영택씨는 실제로 백발을 잘라 붓을 만들어 "내 울어 너온다면"이란 시집을 썼다.
석균씨는 "어머니가 서예와 시를 쓰시고 풍류를 아는 분이었다"고 회고한후 "그러나 어머니가 글씨를 이렇게 잘 쓰는지 몰랐다"며 애통해 했다.
석균씨는 서울공대 재학중 실종됐다.
<>.뇌졸중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상봉장에 나온 안병원(81)씨는 북에서 온 막내동생 필원(70)씨를 보자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경기 용인에 살았던 형제는 병원씨가 서울의 제과점에 취직했다가 전쟁이 나면서 헤어졌다.
형은 뇌졸중으로 말을 잘 못하면서도 "고생 많았지"라며 동생의 손을 잡았고, 동생은 "건강하셔야 할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병원씨가 "자식은 몇이나 뒀냐"고 묻자 필원씨는 "딸인 큰 애는 서른다섯살, 아들인 둘째는 서른셋인데 모두 시집, 장가보냈어"라고 대답했다.
필원씨는 북에서 대학교원으로 있다고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다.
<>.북측 박봉옥(72)씨는 큰딸 홍영애(55)씨가 오열하며 큰절을 올리자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못 알아보겠다. 네애비를 쏙 빼닮았다"고 말하며 겸연쩍어 했다.
이들은 지난 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 헤어졌다.
봉옥씨는 "야, 네는 울음이 쏟아지는데 난 울음이 쏟아지질 않아..."라고 말해 무정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