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가 진퇴양난이다.

둔화되고 있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하나 인플레억제 목표치(연 2%)를 크게 웃도는 물가불안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유럽 11개국의 단일통화인 유로화는 "싸구려통화"로 전락했다.

유로약세는 수출경쟁력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물가상승과 국제투자자금의 탈유럽을 부추긴다.

경기둔화 물가상승 유로화 약세속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경기둔화 가시화=유로존(유로화 도입 11국)경제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독일경제는 3·4분기에 0.6% 성장하는데 그쳤다.

전 분기(1.1%)의 절반 수준이다.

공장주문 산업생산 소매매출도 9월중 전달보다 줄어들어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크레딧스위스퍼스트보스턴의 유럽경제전문가 줄리안 캘로는 "소비자 신뢰도 하락과 물가상승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성장률도 3·4분기 들어 주춤해지는 등 경기둔화조짐이 유럽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증시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영국과 독일의 주가는 올들어 약 6% 떨어지는데 그쳤고 프랑스주가는 연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가불안과 유로약세=9월 중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2.9%를 기록,물가상승 억제선인 2%는 물론이고 예상치인 2.3%보다도 높았다.

배럴당 30달러대의 고유가가 장기화되면서 에너지관련 제품값이 일제히 오르고 유로화가치 하락이 수입원자재 가격 인상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ECB는 물가안정을 위해 최근 13개월간 7차례 금리인상을 단행,기준금리를 연 4.75%로 끌어올렸다.

유로화가치는 지난달 30일 미 경제성장률 둔화 영향으로 근 2개월 만에 처음으로 유로당 0.87달러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여전히 적정 수준보다 20% 가량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유럽 투자자들이 유럽시장을 외면하고 미국증시와 달러화표시채권으로 몰리고 있어 유로화의 본격적인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향후 전망=전문가들은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ECB는 2002년까지 유로존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하고 세계적인 금융불안이 진정된다는 전제하에서다.

ECB는 물가상승률이 올해 전체로 2.3%를 기록한 후 점차 둔화돼 2002년에는 1.9%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같은 고유가 상태가 지속되고 유로화약세도 이어지면 유럽경제는 내년에 최악의 경우 ''고(高)물가-저(低)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도 있다.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안가더라도 미국경제의 경착륙이 현실화되고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내년으로 이어지면 경기둔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