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시장의 마비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미 투기등급채권의 거래는 끊긴지 오래다.

삼성 롯데그룹 등 일부 대기업 계열사가 아니면 회사채 신규 발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기업들의 자금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증시마저 침체에 빠져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태다.

채권발행이 힘들다보니 자금난을 호소하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 부도업체수가 20개월만에 최대로 늘었을 정도다.

문제는 내년이 더 심각하다는데 있다.

이달중 만기가 되는 회사채의 90%이상은 5대그룹이 발행했다.

정부의 장담대로 만기연장은 가능할 전망이다.

그러나 내년은 다르다.

내년에 만기가 되는 회사채는 66조여원에 달한다.

이중 40%가량은 5대그룹 이외의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다.

투기등급 채권의 비중도 33%에 이르고 있다.

회사채 시장을 살리지 않고서는 내년 연쇄도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회사채 시장은 사실상 죽었다=작년 대우사태가 터지면서부터 회사채 시장은 마비되기 시작했다.

회사채의 위험성을 체감한 투신사와 은행등 기관투자가들은 회사채를 기피하고 있다.

현대사태를 거치면서 아예 안전자산만 선호하는 극단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AA등급이상의 채권만 거래된다고 보면 된다(이정수 증권업협회 채권팀장)"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실제가 그렇다.

작년 12월에 거래된 채권은 총88조2천9백90억원에 달했다.

이중 회사채는 31조9천4백50억원으로 전체의 36.1%를 차지했다.

국고채를 비롯한 국채는 전체의 13.9%인 12조2천9백80억원어치만 거래됐다.

지금은 완전히 역전됐다.

지난달 회사채 거래대금은 17조1천1백80억원.전체(1백93조6천6백40억원)의 8.8%에 그쳤다.

반면 국채는 78조7천70억원어치가 거래돼 전체의 40.6%에 달했다.

국채거래만 활기를 띨뿐 회사채시장은 사실상 죽은 셈이다.

◆내년이 더 문제다=채권시장 마비의 파장은 당장 12월이 심각하다.

이달에 만기가 되는 회사채는 10조2백억원에 달한다.

이달 만기가 되는 하이일드에 포함된 1조여원의 투기채도 어떻게든 소화해야 한다.

만기연장(차환발행)이 물건너갈 경우 기업은 무더기로 부도위기에 몰린다.

그래도 이달은 낫다.

전체의 90%이상이 5대그룹이 발행한 채권이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5대그룹은 만기연장이 가능할 전망이다.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에 만기가 되는 회사채는 66조5천5백억원에 달한다.

올해(34조원)의 2배가까이나 되는 수준이다.

단순히 규모가 많아서가 아니다.

내년 만기가 되는 채권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 발행됐다.

외환위기직후 30%에 달하던 회사채수익률은 지난 98년말 8%대로 하락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도 그만큼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실제 내년 만기물량중에서 현대 삼성 LG SK 대우그룹의 회사채물량은 60%가량인 40조여원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는 5대이하 그룹과 중견 중소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다.

투기등급채권도 22조여원에 달한다.

만기연장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쟈딘플레밍증권은 "이를 감안할 때 내년에도 회사채 시장이 살아나지 않을 경우 많은 기업들이 차환발행에 실패하고 부도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금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라=회사채시장이 마비된 것은 자금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지 않아서다.

시중자금은 기업및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바람을 피해 우량은행으로만 몰리고 있다.

지난달의 경우 은행 실세총예금은 6조7천7백억원이나 늘었다.

반면 투신사 수탁고는 1조2천억여원 줄었다.

그렇다고 우량은행이 회사채를 사는 것도 아니다.

은행들은 회사채를 사기는 커녕 기업대출도 꺼린다.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대신 안전한 국고채만을 선호하고 있다.

이에따라 자금시장에선 지표금리만 하락하는 ''국고채 랠리''가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채권시장을 살리는 방안은 이런 악순환을 끊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차단하지 않은채 ''투기등급 채권의 만기이월''''채권펀드 조성''등의 단기대책만 남발한다면 어려움은 내년에 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