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 위해 경제5단체 회장단이 모인 5일 서울 호텔롯데 38층 메트로폴리탄룸에는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제안으로 이날 참석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들도 "잘 모였다. 노동계 등 각 이해집단이 ''현 정부는 밀어붙이면 밀린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계만 앉아서 당할 수 없다"며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터뜨렸다.

이날 모임에 나온 한 재계 인사는 "근로시간 단축 문제만 해도 기업엔 엄청난 부담을 줄 법안인데도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노동계나 여성계 표만을 의식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정치·경제 및 사회불안 등에 대한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짚어 경종을 울리자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특히 국회가 개원 중인 데다 노동계가 동계투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재계가 ''차질없는 개혁과 경제회생''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게 시의적절하다고 판단해 모임을 마련했다고 경총은 설명했다.

경총 김영배 상무는 "경제회생의 근간인 기업·공기업·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작업이 노동계의 거센 반발로 좌절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강경한 어조로 선언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결단력 시급=재계는 정부가 경제회생을 위한 구조조정과 준법질서 확립에 보다 강력한 결단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금 정부는 밀면 밀린다''는 식의 생각과 ''불법파업도 관철되면 무사하다''는 무모한 사고가 노동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다간 국가의 통제기능마저 위태롭게 하고 구조조정 계획을 지연시켜 또 다른 경제위기를 부를 것이라고 재계는 우려했다.

더욱이 일부 공기업의 구조조정과정에서 나타난 이면합의와 같은 심각한 도덕적해이는 진정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제계는 통탄했다.

◆정치권의 노동관계법 처리=재계는 정치권이 소모적 정쟁을 삼가고 개혁과 경제회복 노력에 동참할 것도 아울러 촉구했다.

정치권이 소모적 정쟁으로 인해 경제회생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국민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국회 입법활동에서 인기영합적 고려보다는 냉정한 현실판단을 앞세우라고 재계는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노동관계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목소리 큰 이해집단의 주장이 경제회생을 갈망하는 전체 국민의 민의인가를 똑바로 읽으라고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경제계는 어려운 시기에 경쟁력 제고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저해하는 어떠한 법개정에도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동계·재계의 구조조정 동참=노동계가 당장의 이익에만 얽매여 무분별한 저항을 계속할 경우 각종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 결국 전체 근로자와 국민이 최종적인 피해를 입는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와 재계가 대승적 차원에서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에 적극 동참하자고 촉구했다.

재계는 기업윤리에 바탕을 둔 투명경영을 통해 기업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신규고용 창출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