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의 작가 이청준은 일찍이 "한(恨)은 떼밀려 와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아리타(有田)" 도자기는 바로 조선인의 한이 예술로 승화한 걸작이다.

일본 남단 큐슈섬 사가현에 있는 아리타로의 여행은 "일본속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는 기행"이자 "우리역사에 대한 자성(自省)의 여정"이다.

아리타는 일본 도자기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조선 도공 이삼평이 일본 최초의 백자를 구워낸 곳이다.

정유재란때 일본에 끌려온 그는 1610년 아리타에서 고령토를 발견하고 실향의 아픔을 도자기에 새겨 넣었다.

그의 작품은 일본인의 미의식에 혁명을 일으켰고 그들의 무릎을 꿇렸다.

아리타 도자기는 첫 생산 이후 50년이 지난 1660년부터 유럽으로 수출돼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섬세한 문양, 화려한 색감, 날렵하면서도 견고한 모양새가 서구인들을 압도한 것이다.

검은 지붕마다 푸르스름한 이끼가 덮인 도자기상점들이 즐비한 아리타 거리를 걸으면서 반추해 본다.

우리네 도자기마을 이천 강진 등은 왜 급조된 느낌일까.

아리타에 현존하는 가마터는 1백60여개.

도자기 상점은 3백여개를 헤아린다.

13,14대에 걸쳐 온 후예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삼평의 자취는 유적으로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히와타시 큐슈도자문화관장은 "도공 후예들이 4백년간 끊임없이 기술개발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아리타 도자기는 크게 네가지로 구분된다.

초기 엷은 채색이 담긴 쇼키마리양식, 남색과 적색 금색 등이 혼용된 고이마리양식, 부드러운 초벌구이에 붉은색 그림을 선명하게 넣은 카키에몬양식, 녹색과 적색 황색 등이 온 그릇에 채색된 나베시마양식 등이 그것이다.

특히 아리타 도자기의 붉은색은 한반도의 그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재료는 초기 고령토가 주류였지만 현재 90% 이상이 돌가루를 사용한다.

돌은 흙의 색감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채를 불어넣을 수 있다.

아리타 옆 이마리(伊萬里)의 도기도 이름높다.

과거 아리타 도자기의 선적항이었던 이마리에도 가마터와 상점 들이 즐비하다.

아리타에서 남쪽으로 40여분 떨어진 나가사키현 하우스텐보스(숲속의 집이란 뜻의 네델란드어)는 "일본속 유럽"이다.

17세기 네덜란드식 도시를 옮겨온 테마파크형 리조트.

일본과 유럽의 교류사를 보여주는 각종 박물관,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오락관, 유명브랜드와 전통공예품들을 파는 상점, 잭 니클로스가 설계한 골프장, 유럽풍의 호텔 레스토랑, 아케이드들이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아리타=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