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일본에서는 개각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있지만 핵심은 이번 개각이 내년 1월6일부터 시작될 ''새로운 정부조직''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몇년 전 이미 예고된 대로 종전의 1부 20개 성청(省廳)을 통합ㆍ조정한 새로운 1부 12개 성청체제에 대응하는 개각이다.

맥아더의 군정개혁에 버금가는 반세기 이상 지속돼 온 정부조직의 일대 개혁이다.

새로운 일본 정부조직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다.

일본 관료주의의 핵심으로 오랫동안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며 일본 금융업계을 짓눌러왔던 대장성은 재무성으로 축소되면서 금융업무가 떨어져 나간다.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은 문부과학성으로 개편돼 새로운 교육개혁에 적극 나설 수 있게 된다.

환경청은 다른 부처의 관련 업무를 통합하면서 환경성으로 격상돼 지구온난화 문제 등 국제적 환경규제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통상산업성은 경제산업성으로 명칭이 바뀌어 디지털경제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경제환경에 걸맞은 경제구조 개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우정성 자치성 총무청의 통합(총무성),운수성 건설성 국토청 등의 통합(국토교통성),후생성 노동성의 통합(후생노동성)에서 나타나듯이 많은 정부조직들을 일단 통합함으로써 효율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주목된다.

총리직속 내각부의 권한과 조직이 강화돼 조정기능을 높인 것도 큰 특징이다.

새로운 국가정책이 관료들의 손에서 왔다갔다하며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정치권이 적극 주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행정개혁담당,금융담당,경제재정 및 IT담당,과학기술정책담당 등의 특명상(特命相:특명장관)도입이 눈길을 끈다.

행정개혁 특명상의 정책과제는 지난 1일 각의에서 결정된 행정개혁 요강을 실천하는 일이다.

각종 정부 투자ㆍ출자ㆍ보조기관 등 공공부문의 대대적인 개혁을 위해 특수법인 등에 대한 ''정리합리화 개혁''을 수립ㆍ실시하고 늦어도 2005년까지 법적·제도적 조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공무원제도의 근본적 개혁,공무원의 산하기관 이동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승인제도 도입,민간전문가의 적극적 임용도 포함된다.

또 대대적인 규제개혁과 전자정부 실현도 추진한다.

금융담당 특명상의 도입은 금융기관과 보험업계 등의 건전화를,경제재정과 함께 IT를 담당하는 특명상의 도입은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IT발전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정책담당관 및 ''종합''과학기술회의(종래는 과학기술회의)도 눈길을 끈다.

국가적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각 부처에서 이뤄지는 과학기술정책을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종합과학기술회의의 대상이 종래의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으로 확대돼 학문의 융합추세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과학기술시스템도 대대적으로 개편된다.

국·공립연구소의 독립행정법인화가 추진돼 연구소들의 대형화·전문화를 위한 합병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본의 개각인선이 일본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일본인들의 기대를 담은 새로운 정부조직이 출범했고 특히 이것이 어느날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라 이미 예정돼 왔다는 점이다.

지난 96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하시모토(이번 개각에서 행정개혁담당 특명상으로 임명)는 행정개혁과 재정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해 승리했다.

그는 당시 ''불덩어리가 돼 행정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바로 행정개혁회의를 출범시켰다.

이후 97년 대장성개혁법안 및 성청개편안 수립,98년 성청재편법안 성립 그리고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금의 조직이 출범한 것이다.

우리가 일본 정부조직 개편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90년대 들어 21세기를 지향한다며 수많은 정부조직 개편을 거듭해왔지만 미래의 비전을 담보하기는 커녕 아직도 부처간 영역다툼으로 밤을 지새야 할 정도로 졸속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안현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