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고교와 대학들이 진학 및 입시준비에 초비상이 걸렸다.

수능성적 발표 결과 상위권층이 사상 최대로 두터워진 데다 동점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수험생과 학부모,진학지도를 맡은 교사들은 학생들의 대학선택을 놓고 대혼란을 겪고 있다.

대학들은 동점자 처리에 골몰하고 있다.

"쉬운 수능도 좋지만 해도 너무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에 따라 올 입시에서는 유례없는 대혼전과 극심한 눈치작전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변별력 없는 수능시험을 더이상 계속해서는 안된다는 비난도 비등하다.

◆진학지도 혼선=진학담당 교사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대점수''를 고려해 하향 안전지원을 유도하려는 교사들과 자신이 얻은 ''절대점수''만 믿고 지원하려는 학생들 사이에 신경전도 치열하다.

서울 구정고 3학년 부장 박봉무(58)교사는 "고득점자가 양산되는 바람에 대학과 학과 선택을 종잡을 수 없게 됐다"면서 "하향 지원을 유도해야 하는데 어느정도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 지를 가늠할 수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서울고 이희언(41)교사도 "학생들을 설득할 기준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고득점 인플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수능시험에서 3백90점대를 받았다는 대원외고 유모(18)양은 "수능시험이 너무 쉬워 성실하게 시험준비를 해온 학생들이 손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3백93.5점을 받았다는 구정고 설모(17)군도 "이미 가고싶은 대학과 학과를 정해 놓았었는데 다들 점수가 높게 나와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동점자처리 비상=고득점 동점자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학생선발에 비상이 걸렸다.

고려대 김성인 입학관리실장은 "소수점 차이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며 "객관적인 선발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들은 대체로 논술및 면접 평가를 세분화하고 동점자 처리 기준을 강화키로 했다.

서울대는 동점자 처리 기준을 종전 5단계에서 8단계로 늘려 이번 특차 모집부터 적용키로 했다.

정시모집에서는 논술고사 평가기준을 세분화하고 심층면접을 도입,변별력을 높일 방침이다.

연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서강대 한양대 등도 각 전형요소별 사정기준을 세분화해 엄격히 적용할 계획이다.

한양대 노종희 교무처장은 "논술을 치르는 인문계의 경우 예년보다 기본점수를 줄여 변별력을 높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면접과 논술에서 변별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학들이 난감해하고 있다.

◆''쉬운 수능''에 대한 비난=수능이 시작된 지난 94학년도 이후 시험 난이도 조절이 이번처럼 실패한 유례가 없었다는 것이 입시전문기관과 수험생 학부모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수능시험 출제를 맡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측은 당초 "상위 50% 평균성적이 3∼5점 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실제 채점 결과 상위 50%의 평균 점수는 26.8점이나 올라 신뢰도에 먹칠을 했다.

입시 관계자들은 "수능을 쉽게 출제하려는 교육당국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변별력은 갖춰야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강대 입시 관계자도 "변별력과 난이도가 조절되지 않은 문제를 내 학생선발에 큰 혼란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