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업계에 외국 기업들이 몰려오고 있다.

코스닥 침체와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등 잇따른 사고로 벤처업계가 시름에 빠져 있는 가운데 외국 정보통신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 대표 닷컴기업들이 불투명한 수익모델 등으로 흔들거리면서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국내 벤처시장이 외국 기업들엔 좋은 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거나 국내 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맺는가 하면 국내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도 서슴지 않고 있다.

벤처업계 일각에선 국내 투자 열기가 주춤해진 사이에 유망한 초기 벤처기업들이 외국 업체들에 의해 입도선매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 열기를 국내 벤처기업들의 국제화 전략과 연결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다양한 진출형태 =한국 벤처시장을 겨냥한 외국 기업들의 진출방식은 크게 세가지.

자본투자, 지사 설립, 한국 업체와의 제휴가 그것이다.

외국 기업들은 한가지 방식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세가지 방식을 적절히 섞은 복합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퀄컴과 시스코시스템스는 최근 한국 벤처기업에 대한 수백억원대의 투자계획을 발표해 자금난을 겪고 있는 국내 벤처기업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퀄컴은 한솔아이벤처스 등과 함께 6백76억원 규모의 "퀄컴 한솔아이벤처스 CDMA펀드"를 설립, 퀄컴의 CDMA기술 라이선스를 사용하거나 앞으로 사용할 벤처기업 및 CDMA 기술과 연관성이 있는 벤처기업들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시스코시스템스도 국내에 주문형반도체(ASIC)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 내년부터 3년동안 1천1백80만달러를 국내 벤처기업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투자키로 했다.

지난달엔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팩커드 인텔이 국내 인큐베이팅 업체인 사이버펄스 네트워크와 함께 2백억원을 조성, 국내 인터넷 벤처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 10월엔 컴팩이 국내 벤처기업 가운데 "컴팩 e코리아 파트너"를 선정해 총 1억달러를 투자키로 해 돈 가뭄으로 애를 태우고 있는 벤처기업인들을 설레게 했다.

한국 벤처투자에 나서는 외국 기업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유망한 벤처기업이라고 해서 무작정 투자하는게 아니라 자신들의 기술이나 비즈니스와 관련이 있는 기업들을 중점 발굴해 투자하고 있다.

이는 투자기업을 코스닥에 등록시켜 자본이익을 얻는 것 외에도 자신들의 국내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활용하고 기술개발을 위한 협력자로 이용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국내 지사 설립을 추진하는 업체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세계적인 인터넷 컨설팅 업체인 에이전시닷컴이 미국 벤처캐피털인 에스나그룹과 합작으로 한국법인을 설립한데 이어 아마존 아리바 커머스원 등이 지사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 상생(相生)의 기회로 활용해야 =외국 기업들이 한국으로 앞다퉈 몰려오는 이유는 한국 시장의 향후 전망을 밝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이용자가 1천6백만명을 돌파했고 휴대폰 가입자는 2천8백만명을 넘어섰다.

한국은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업들에겐 매력적인 시장일 수 밖에 없다.

최근 한국을 찾은 미국의 인터넷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 2.0" 편집장인 러스 미첼(46)은 "한국은 이동통신 무선인터넷 인터넷TV 등에서 기술력이 앞선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며 "한국이 유망한 시장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닷컴기업들과 벤처기업들이 잇따라 터져나온 악재로 고전하고 있는 것도 외국 기업들엔 보다 싼 값에 국내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 외국 기업들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지역의 거대시장을 공략하는 교두보로서 한국에 진출하려는 계획도 가진 외국기업도 적지 않다.

국내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벤처기업들이 국제화 전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외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을 이용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는데 보다 적극성을 띨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