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두척이 나란히 강물을 건널 때 자신이 탄 배에 빈 배가 와서 부딪히면 아무리 성미가 급한 사람도 성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 안에 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다면 곧 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고 마침내 욕설까지 퍼부을 것이다''(장자 ''산목'')

빈 배와 사람이 탄 배의 비유를 들어 겸허함의 중요성을 일러주는 얘기다.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은 이 대목을 ''논어''''구약성서''''탈무드''의 잠언과 비교해가며 "이 풍진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려면 교만하지 말고 빈 배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일깨워준다.

그가 동양사상을 에세이 형태로 풀어쓴 시리즈 ''쓸모없음의 쓸모있음''(도가편),''누가 자유로운가''(불가편),''무엇을 사람이라 하는가''(유가편)를 한꺼번에 펴냈다.(청년사,각권 9천8백원)

심씨는 젊은 시절부터 권양재·김중재,탄허·월산스님 등으로부터 유·불·도 3가(家)의 사상을 배웠고 중국 옌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양국을 오가며 동양사상의 참뜻을 깊이 연구한 학자.

남들이 서양 문물을 좇는 동안에도 묵묵히 동양정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꽃을 피웠다.

그동안 ''퇴계전서''''조선왕조실록''등을 번역했고 ''제3의 사상''''이율곡과 왕안석에게서 배우는 경제개혁의 지혜''등을 썼으며 동양사상 관련 논문만 해도 수십편에 이른다.

이번 시리즈는 도가·불가·유가의 대표경전에서 알짜 이야기를 뽑아 뜻풀이를 곁들이고 동서양 철학을 가로지르는 성찰까지 담아낸 것이다.

도가편에는 사람 보는 아홉가지 방법,닷섬들이 큰박,사흘만에 죽어버린 바다새,문혜군에게 깨우침을 준 백정,원숭이와 주공의 차이 등 ''노자''''장자''''열자''등에서 간추려낸 우화들이 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심백강식 경전 주해.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씨·날줄로 엮어내는 해박함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혜자가 장자에게 정승 자리를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장면은 중국 도연명과 일본 게이추 선사의 일화와 겹쳐 설명한다.

송나라 여관 주인의 못생긴 첩이 미인 첩보다 사랑받는 까닭을 얘기할 때는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성서 구절까지 동원한다.

불가편에는 외아들을 잃고 따라 죽으려는 노파에게 한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향불을 구해오라고 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일화 등이 들어있다.

온갖 고통을 겪고 비구니가 된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통해서는 인과응보와 운명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운(運)은 움직임,즉 유동적인 상태를 뜻하고 명(命)은 고정불변을 뜻하는데 사람이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절반이나 된다는 얘기다.

유가편에는 인본·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용의 미덕이 잘 드러나 있다.

유가를 전제군주에 봉사하는 보수사상으로 매도할 게 아니라 그 장단점을 제대로 평가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실려있다.

중용 얘기 속에 나오는 유좌(宥坐)는 속이 텅 비었거나 물이 넘칠 때 기울어지고 절반쯤 채워졌을 때 바로 서는 용기.

옛사람들이 자리 옆에 놓고 자신의 마음이나 몸가짐을 가다듬는 도구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중용이라고 해서 어느 한군데 고정된 중간이 아니라 극단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것과도 다르고 고집스런 중간과도 다른 최선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유가의 성인과 불교의 부처,도가의 진인은 마음에 아무 걸림없이 죽음조차 잊고 사는 자유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고 역설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