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CFO(재무최고책임자)들에게는 올 연말이 ''악몽'' 그 자체다.

현대건설 재경부문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김재수 관리본부장(현대그룹 구조조정위원장 겸임)은 몸이 10개라도 모자란다고 하소연한다.

오는 20일께 현대건설 자금문제를 다룰 채권단회의를 앞두고 있는데다 시중의 ''돈맥경화''가 심해지면서 자금줄을 점검하느라 매일 아침 6시 출근하고 새벽에 퇴근해야 할 정도로 바쁘다.

최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을 수행,김경림 외환은행장을 시작으로 김정태 주택은행장,김승유 하나은행장,위성복 조흥은행장,김진만 한빛은행장 등을 잇따라 만났다.

금감위 등 정부 관련부처도 방문했다.

회사 안에서도 CFO만 쳐다보는 분위기다.

매일 매일의 자금을 일일이 체크하는 한편 실무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자금수급 계획과 대책을 세우는 것도 CFO의 몫이다.

현대 김 본부장만 유독 바쁜 게 아니다.

3·4분기들어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신용경색이 극심해지면서 우량기업들의 재무담당책임자들도 어느 때보다 고달픈 연말을 보내고있다.

올해 사상최대의 매출을 올린 모 그룹 기업의 재무담당은 "영업의 경우 최근 상황이 나빠도 연간실적으로 보면 좋기 때문에 느긋한 편"이라면서 "재무쪽만 죽을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LG전자의 CFO를 겸하고 있는 정병철 사장은 ''최고이익''을 올려놓고도 주가 때문에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라고 털어놓는다.

경상이익이 올해 사상 최대인 7천억원대에 이를 전망이지만 주가가 연초대비 70% 이상 곤두박질친 까닭에 그렇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같은 우량기업의 CFO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의 재경담당 김원갑 전무는 올 연말까지 돌아오는 회사채의 상환문제를 이미 마무리짓는 등 한숨을 돌린 상황임에도 밤 늦게까지 챙길 일들이 여전히 많다.

내년 사업계획 작성과 현금확보,수출 활성화라는 과제가 모두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것이 내년 사업계획이다.

내년 주가전망이 불투명해 증시를 통한 자금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회사채 시장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의 최도석 대표도 비슷한 숙제를 안고 있다.

이에따라 기관투자가들과 회사채 시장의 관련자들을 만나 회사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또 내년 해외시장 IR프로그램 준비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제일모직의 CFO인 천기수 이사도 그룹 자금담당 임원회의에서부터 신용평가회사 기관투자가 방문,경영기획 회의 등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행군이다.

오는 20일 열리는 연말 경영회의에서 발표할 내년도 자금조달 계획을 마련하는 일도 큰 짐이다.

가장 큰 고민은 액면가에 간신히 턱걸이하고 있는 주가.

올들어 처음으로 해외IR까지 벌이고 업종 변경까지 시도하며 주가 끌어올리기에 나섰으나 별 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올해장이 마감하는 26일이 다가올수록 입술이 바짝 마른다고 그는 심경을 토로했다.

"혹한도 남의 얘기다.추위를 느낄 겨를이 없다"는게 CFO들의 요즈음 심경이다.

문희수·윤진식 기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