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동차산업에서 2000년은 유례없는 격동의 한해였다.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매각돼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했다.

트럭 등을 생산했던 삼성상용차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아 아예 문을 닫게 될 처지가 됐다.

대우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가 매각협상이 아직 진행중이지만 GM으로 넘어가기 일보직전인 상황이다.

한때 대우차에 합병됐다가 분리된 쌍용자동차는 대우차와 함께 GM에 매각될 지 여부가 아직 미지수지만 워크아웃 상태여서 독자생존의 길로 갈 수 있을 지가 불분명하다.

현대.기아자동차가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지만 현대자동차에도 다임러크라이슬러가 2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현대.기아,대우,삼성 등 순수 한국업체 3사체제로 돼있던 구도가 외국계 2개사에 현대.기아가 맞서는 형국으로 바뀐 것이 2000년 결산을 10여일 앞둔 한국자동차산업의 현주소다.

한국자동차산업에 2000년은 좌절이었고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IMF 관리체제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이후 외자유치에 명운을 걸어야했던 한국경제의 아픔과 회생을 위한 몸부림은 자동차산업의 올해 1년 소사에 극명하게 투영돼있다.

특히 대우자동차가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면 한국자동차산업은 물론 한국경제의 현재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우자동차 국제입찰은 국부유출과 한국자동차산업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상반된 시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부침을 거듭했다.

대우차 처리과정은 곧 한국자동차산업의 재평가과정이기도 했다.

6월말 포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때까지만 해도 차라리 사정은 나았다.

그러나 9월 포드가 대우 인수포기를 전격적으로 발표하면서 대우자동차에 대해 남아 있던 환상은 깨졌고 대우차의 몸값은 폭락했다.

이같은 결과는 한국경제 전체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졌다.

포드에 이어 GM이 대우 인수자로 나서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칼자루는 대우나 한국정부.채권단이 아닌 GM이 쥐고 있다.

한국경제의 "홀로서기"는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국자동차산업의 앞날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6월 GM 포드와 함께 빅3의 일원인 다임러크라이슬러에 지분 10%를 넘겨주는 전략적 제휴를 체결,세계자동차산업의 "새판짜기"에 동참했다.

독자생존의 길은 좁혀졌지만 다임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올해 성적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한국자동차의 올해 수출규모는 1백68만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보다 11.3% 늘어난 것으로 사상최대의 실적이다.

승용차 수출만 해도 올해 1백54만9천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자동차생산도 승용차 2백60만7천대를 포함,3백11만대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3백만대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성장세는 내년에 다소 제동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내 경기침체로 내수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수출에서도 미국과 서유럽 경기하향 추세를 감안할 때 올해와 같은 신장세를 기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때문이다.

물론 대우차의 해외매각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자동차공업협회는 내년 내수가 1백38만대에 그쳐 올해보다 3.5%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출은 1백70만대로 1.2% 정도 늘어나겠지만 생산은 내수부진의 감소폭이 커 올해보다 1% 정도 줄어든 3백8만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승용차 역시만 보더라도 내년 수출이 1백56만5천대로 1%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내수가 올해보다 3.3% 감소한 2백58만5천대에 그쳐 생산규모는 2백58만5천대로 0.8%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업계의 의지는 강하다.

이계안 현대자동차 사장은 "내수는 물론 수출여건도 어려운 점이 많지만 신차가 투입될 예정이기때문에 내수부진을 수출로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현대는 내년 해외시장에 EF쏘나타에 이어 RV(레저차) 싼타페와 대형차 에쿠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신차도 내년에는 소형 RV차,2002년에는 소형 월드카(리터카)가 다임러및 미쓰비시와 공동으로 개발돼 출시될 계획으로 있는 등 계속 줄지어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은 한국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은 아무도 해내지못할 것이란 비관적인 예상 속에서도 포니를 독자적으로 개발한 저력을 갖고 있다.

포니가 해외시장을 누볐던 신화가 살아있는 한 한국차는 내년에도 달릴 것이고 또 달려야 한다.

문희수 기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