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NTT(일본전신전화)에 민원전화를 걸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깜짝 놀라게 된다.

담당자가 전화거는 사람이 누구인지,어디 사는지,몇살인지,어떤 물건을 잘 사는지 등 개인정보를 먼저 알고 응답하기 때문이다.

NTT가 사용하는 이런 시스템을 보통 ''정보표시단말기''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여러 회사에서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가장 먼저 개발한 곳은 일본 미쓰이조선시스템연구소다.

NTT가 활용하는 시스템도 바로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 한국인이란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를 개발한 사람은 최상혁(42)씨.

현재 벤처업체 사장인 그는 일본 도후쿠대학 정보공학과를 졸업하고 미쓰이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이를 고안해냈다.

지난 90년초의 일이다.

최 사장은 이 시스템을 개발한 뒤 거래처로부터 일본 상품권회사인 JTB의 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선물받은 상품권으로 구두를 사기 위해 도쿄 신주쿠에 있는 백화점에 들렸다.

거기서 구두를 고른 뒤 대금을 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져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상품권을 집에 놔두고 온 걸 그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민망스럽게 백화점을 나오면서 그는 이런 다짐을 했다.

언젠간 빈손으로 백화점을 찾아가도 신분만 확인되면 물건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공대에서 경영정보시스템(MIS)을 공부한 뒤 그는 다시 일본으로 가서 히타치제작소에 근무하며 빈손으로 백화점가는 시스템을 개발해보기로 거듭 마음먹었다.

그는 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난 4월 서울로 돌아와 사이버 상품권 개발업체인 ITB를 설립했다.

ITB는 1단계로 사이버상품권을 e메일로 사고 선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 상품권을 받은 사람은 맨손으로 백화점에 가더라도 비밀번호만 대면 물건을 살 수 있다.

지난해부터 상품권 발행 제한 제도가 폐지되면서 이의 국내 수요가 급격히 증가,올해 상품권 시장규모는 이미 4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내년엔 적어도 5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활용하는 인구가 1천6백만명선에 이른 점을 감안한다면 사이버상품권은 앞으로 1조원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최 사장은 "이를 겨냥해 내년 3월부터 사이버 티켓을 백화점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최 사장은 2단계로 자신의 첫 개발품인 ''정보표시단말기''를 활용,현금이나 카드 또는 상품권 없이 백화점에 가도 신분을 확인해주는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다.

맨손으로 백화점에 가도 물건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