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의 43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사상 유례 없이 치열했던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를 누르고 백악관의 주인으로 낙찰되기는 했지만 이번 선거가 초래한 후유증은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민주주의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이 재검표와 잇따른 법적소송등으로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것에 대해 미국의 선거제도,나아가 민주주의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헌법위기를 맞는다면 그것은 비단 미국 일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이번 대선과 관련해 이러한 위기를 맞이한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의 정치구조가 시대상황에 맞게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를 포함한 미국의 제반 정치구조는 오늘날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른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사실 우리가 과거로 조금만 눈을 돌려 본다면 현존하는 정부 구조의 대부분이 농업이 산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무렵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투표권은 소수에게만 주어졌다.

관료제도의 발달도 아직 미미했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이에 따른 도시화는 상황을 1백80도 뒤바꿔 놓았다.

오늘날 미국은 대중사회의 단계를 이미 넘어서 지식경제사회로 접어들었다.

이 사회에서는 단일성이 아닌 다양성이 새로운 흐름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다양성이 보다 촉진되게 된 계기는 수많은 정보를 개인들에게 전달해 주는 인터넷의 등장이었다.

복잡화된 사회는 정부나 정치인들이 다루어야 하는 이슈의 다양화도 가져왔다.

과거 농업이 주류였던 사회에서는 빵과 토지,자유가 사회의 주된 이슈였다.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이 이슈는 고임금과 복지확대로 바뀌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이슈는 보다 다양화됐다.

여성참정권과 기본권의 확대,동성애자의 권리보장,사생활보호 확대등이 그것들이다.

인터넷은 이처럼 다양한 이슈들이 보다 활성화되도록 만든 촉매나 다름없다.

오늘날 인터넷을 이용하는 미국의 2억7천5백만명의 네티즌들은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와 주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의 물결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제2의 물결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변화의 속도증가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도 제3의 물결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속도 변화와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3의 물결 사회는 인터넷의 속도로 작동되는 곳이며 정치에 대한 영향력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러나 이처럼 스피디한 변화에 대처하는 정치권의 대처는 너무 느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의 정치적 의사결정 채널은 지나치게 부하가 많이 걸려 있으며 신속한 결정에 방해물이 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미래의 충격이란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이번 선거에 참가한 미국인이 거의 50대 50으로 분할됐다고 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두개의 집단으로 쪼개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번 분열양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성급히 진단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0세기식 대중 민주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미국은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개개인들의 가치가 존중될 수 있는 민주주의를 막 도입하려고 하는 시점에 있다.

정리=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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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최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