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이제 우리 시대의 상투어 중 하나가 됐다.

이 슬로건은 이미 강력한 하나의 이념적 명제가 돼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을 지배한다.

인터넷이 그것 자체의 힘으로 세계를 바꾸는 게 아니라,인터넷을 둘러싼 갖가지 풍문들이 세상을 움직이며 우리에게 새로운 억압을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인터넷을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을 만들어내고,결국 ''인터넷이 사람을 바꾼다''라는 무서운 명제로 귀착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혹은 그러해야 하는가?

우리 나라가 상대적으로 빨리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고 있고, 심지어 ''자원이 부족한 우리가 살 길은 사이버 공간뿐''이라고 선전하는 상품 광고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정보 제공의 기회는 아직 세대간.계층간에 평등하게 주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야심적인 닷컴 기업들 가운데 제대로 수익 모델을 만들어낸 기업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인터넷 세상에 온전하게 진입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물론 탈지역성(脫地域性)과 실시간성(實時間性), 그리고 쌍방향성(雙方向性)이라는 인류 역사상 어느 매체도 갖지 못한 강력한 장점으로 인해, 인터넷은 인간의 문명 자체를 새로운 차원으로 바꿔 놓을 ''폭발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다.

우선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들의 과잉된 물량과, 익명성으로 인해서 빚어지는 여러 문제들이다.

정보들의 홍수는 정보의 질에 대한 취사선택의 비판적 거리를 없애버리며, 또 그 정보의 주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봉쇄한다.

너무 많은 정보의 쓰레기들은 사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와 같으며, 우리는 그 정보를 주무르는 권력과 자본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문제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새로운 ''게시판 문화''다.

각종 기관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네티즌들로 하여금 스스로 의견을 개진하게 함으로써 다수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실제로 이러한 공간은 낡은 주류 미디어 안에서의 보수적·엘리트주의적 한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전자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각종 안티 사이트들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정치적 다양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주어진 이러한 무한대의 자유로운 발언 공간은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해줌으로써 동시에 무책임과 자기기만을 동반하는 폭력성을 조장하고 있다.

최근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피해를 입은 개인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그 게시판에 대한 조직적인 개입으로 여론을 왜곡하는 사례가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맹목과 편견, 증오와 자기 도취의 말들이 난무하는 게시판 문법은 그야말로 언어의 ''진창''을 보여준다.

물론 그 진창 안에는 보석이 숨어 있다.

이런 문제들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인터넷에 대한 규제로 해결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아무리 번거롭고 또 시끄럽다고 해서 그것을 말살하려는 것은 엘리티즘, 혹은 더 나아가 파시즘의 심리적 기원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익명의 대중에게 부여하는 무한 자유는 디지털 자본이 개인들의 욕구를 이용하면서 자기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이 인식돼야 한다.

이 새로운 미디어 문화가 개인 주체를 완전히 종속시키는 데 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기에 대한 비판적 해독 능력이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 매혹적인 새로운 매체에 대한 비판적 자의식이다.

그러니까 인터넷이 사람을 바꾸기 전에 사람이 인터넷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우리는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런 소통방식도,자신의 존재가치도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괴물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over82@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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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고려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문학 박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평론집 ''소설은 탈주를 꿈꾼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