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원로 문인 두 명이 타계했다.

시인 서정주와 소설가 황순원.''국화옆에서''와 ''소나기''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두 사람은 공교롭게 1915년생 동갑내기다.

그러나 고인들은 여러가지 점에서 상반되는 삶을 살았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선운사를 바라보며 성장한 서정주는 불교적 세계관에 깊이 침윤된 인물이다.

평북 대동군 출신인 황순원은 기독교적 세계에 친밀감을 느꼈다.

1936년 전라도 ''촌놈''인 서정주가 ''시인부락''을 만들어 소위 ''인생파''의 선두주자로 떠올랐을 때 와세다대 영문과 학생인 황순원은 첨단조류인 모더니즘에 심취해있었다.

두 사람 모두 출발점은 시였다.

소설로 ''전향''한 황순원이 언어의 조탁을 중시하는 ''노력형''이었다면 서정주는 토해내는 대로 시가 되는 ''천재형''에 가까웠다.

살아있는 피끓는 생명의 전율을 노래한 시편들은 ''살아있는 시신(詩神)''이란 찬탄을 이끌어냈다.

액체화된 불로서 피가 서정주 시의 주요 모티브였다면 고체화된 물로서 얼음은 황순원 소설세계를 상징한다.

서정주는 보들레르의 유미주의에 기대어 정신착란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황순원은 엄격한 휴머니스트로 남았다.

시인과 소설가로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았던 두 사람은 시대와 마주하는 방식도 판이했다.

순응의 세계관을 체득한 서정주는 1943년 친일문학잡지 ''국민문학''에 들어가 반민족적인 글을 썼다.

황순원은 1942년부터 집에 틀어박혀 일절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혼자 간직하고 있던 원고는 해방이후 출판됐다.

황씨는 이후에도 정치활동에 전혀 간여하지 않았다.

상반되는 인생 역정에도 두 사람은 한국인의 근원적 심성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환란의 20세기를 붓한자루로 통과한 고인들은 21세기 한국인이 선택해야할 삶의 방식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아울러 그들의 빈자리를 메워야할 젊은 문인들을 생각하게 된다.

토마스 만이 죽고,헤르만 헤세가 세상을 떠나 독일 문단이 쓸쓸해졌을 때 귄터 그라스는 나타났다.

윤승아 문화레저부 기자 ah@hank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