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경기가 날씨만큼이나 ''썰렁''하다.

구조조정 한파에 경기침체까지 겹쳐 소비심리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재래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백화점과 할인점도 매출 부진으로 울상이다.

송년회나 동창회 모임으로 대목을 노렸던 음식점과 술집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달력 인심이 사나워진 것은 물론 연하장마저 줄었다.

이같은 상황은 지수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국은행은 28일 세밑 경기가 2년여만에 최악이라고 발표했다.

한은 조사결과 소비자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올 4.4분기의 소비자동향지수(CSI)는 52를 기록했다.

지난 98년 3.4분기 이후 최저수준이다.

더욱이 전분기(70)보다도 더 떨어져 소비심리 위축이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6개월간의 경기전망을 나타내는 향후경기전망 CSI도 전분기 70에서 59로 급락, 98년 3.4분기(42)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만큼 장사가 안된다는 얘기다.

서울의 경동시장 청량리시장 동대문시장 등 재래시장은 연말 매출이 작년의 절반에 불과하다.

동대문시장에서 10년째 옷을 팔고 있는 이현석(38.혜양엘리시움)씨는 "시장 상인들은 연말에 한몫 잡아 비수기인 1∼2월을 버틴다"며 "내년초까지 견딜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두산타워에서 여성복을 파는 박경중(46)씨는 "작년만 해도 하루 1백5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는데 올해는 지난 10월 이후 1백만원을 넘긴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전세버스도 작년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의 경기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황금상권이라고 하는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의 경우 지난 10월부터 매출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다른 백화점이나 할인점들도 ''작년 수준''인 곳은 거의 없다.

연말 대목이 실종된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작년에 벤처기업 폭발로 재미를 보았던 연하장과 달력 업체 등은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분위기다.

작년에 다이어리를 무더기로 주문했던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의 벤처기업중에 올해는 수첩이나 달력을 제작한 곳이 거의 없다.

대기업들도 달력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연하장을 무료 인터넷카드로 때우는 통에 연하장 업체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이맘때면 각종 송년모임으로 ''밥집''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지만 올해는 어지간하면 예약 없이도 방을 잡을 수 있다.

대목인 데도 ''가격 할인''을 내세우며 손님 모시기에 바쁜게 요즘의 모습이다.

연말이면 으레 있었던 기업인사(人事)마저 올해는 하지 않아 꽃집에도 비상이 걸렸다.

충무로에서 대경화훼를 운영하는 김인철(43)씨는 "작년 이맘때는 이리저리 난초를 배달하느라 아르바이트 학생 세 명을 썼었는데 올해는 생활비 건지기도 어렵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